흔들리는 대한민국, 무너져 내리는 안전시스템
흔들리는 대한민국, 무너져 내리는 안전시스템
  • 김채연 기자
  • 승인 2016.10.08
  • 호수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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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대비 매뉴얼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최근 발생한 경주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 엉망이 된 가정집의 모습이다.
지난달 12일,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5.8에 달하는 강진이 발생했다. 당시 경주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지진에 놀라 서둘러 대피하려 했지만, 대처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몇몇 주민들은 대피요령과 다르게 건물 바로 앞에 모여 시설물 낙하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정부의 지진 대처 수준도 심각했다. 지진 발생 당시 경주 시민들은 국민안전처로부터 지진 발생을 알리며 안전에 주의하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받았다. 하지만 해당 문자는 지진이 발생한 9분 후에야 발송된 것으로 이미 지진을 겪은 시민들에게 재난문자는 무용지물이었다. 또한 대피요령이 게시된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지진 발생 당시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한 안전처의 잇따른 부실대응에 국민은 크게 실망감을 드러냈다.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실무매뉴얼
국민안전처의 지진재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에는 지진의 규모에 따라 다른 대응방식을 취하도록 명시돼있다. 하지만 5.0 이상의 지진 상황은 세분화돼 있지 않아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규모 5.0과 규모 7.0은 진도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만, 안전처 실무매뉴얼에선 이를 ‘5.0 이상의 지진’이라는 하나의 재난 상황으로 엮어 같은 대응방식을 취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과 현대사(史)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규모 7.0의 아이티 지진을 하나의 상황으로 보고 동일한 재난대응방식을 적용하는 꼴이다.

이름만 지진 대비훈련?
현재 시행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 지진 안전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행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지진 관련 내용은 초등 3학년 이후부터 등장한다. 즉, 초등 1~2학년 과정엔 지진에 대한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이다. 또한 초등 3학년 이후의 교육과정도 지진 대처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고, ‘머리를 보호한다’, ‘탁자 밑으로 숨는다’ 등 형식적이고 간략한 수준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 실제 지진대비 훈련에서도 대부분 영상시청 등 이론교육 위주로 진행하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일본이 유치원 때부터 지진대비 훈련을 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이런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안일하다고 볼 수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에도 문제가 존재한다. 민방위 훈련이라 불리는 재난대피훈련이 매달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형식적으로만 존재할 뿐 시민들은 지진대피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다. 또한 훈련이 이뤄진다고 해도 이를 거의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훈련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건물 내에 앉아있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국민안전처가 홍보 중인 지진 행동요령이 16년 전 소방방재청이 제작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고 밝혀짐에 따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진발생시 국민행동요령’이라는 소책자는 2000년 12월에 초판 인쇄됐으며, 책자에 있는 내용은 현재 국민안전처가 밝힌 ‘10가지 행동요령’과 같다. 내용뿐만 아니라 제목과 삽화까지도 16년 전 자료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유 의원은 16년 동안 매뉴얼을 수정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대응매뉴얼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경주지진 당시에도 많은 시민이 대피방법을 몰라 안전한 대피를 하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매뉴얼 재정비가 시급하다.

내진설계 제도의 미비점
한편 이번 경주지진 이후, 건축상 내진설계 제도의 미비점도 발견됐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건축물 698만 6,913동 중 내진확보가 된 건축물은 47만 5,335동으로 6.8%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진 발생 빈도가 낮았고 도시 산업화가 급속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 비율이 낮다는 것이 주된 분석이다.
내진설계 도입 시기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1988년 이전 건축물은 내진설계가 의무화되기 전에 지어진 것으로 내진설계가 거의 돼 있지 않다. 1988년 이후 법제화된 내진설계 기준도 6층 이상의 건물에만 한정돼 있으며, 2005년이 돼서야 3층 이상의 건축물로 규정이 강화됐다. 즉 1988~1999년에 건축된 6층 미만 건물, 2000~2004년에 건축된 5층 미만 건물 그리고 2005년 이후에 건축된 3층 미만 건물은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아 지진에 취약한 것이다. 이런 규모의 건물이 국내 건물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에 지진 발생 시 정부와 각 기관의 대처가 더욱 중요하다.

이젠 제대로 대비해야 할 때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 비해 지진빈도가 낮았던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진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공하성<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최근까지도 국민안전처에서조차 지진에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현행 지진대비매뉴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중요사항은 매뉴얼 앞쪽에 정리하고 세부사항은 뒤쪽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매뉴얼을 재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 교수는 “지진 발생 전 조치사항과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을 구분해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SNS, 포털사이트 등에도 공지해야 한다”며 지진대비매뉴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한상환<공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현행 내진설계제도의 미비점에 대해 “최근에 건축된 3층 이상의 건물은 모두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층 다세대 주택의 경우 설계자별로 적용을 달리해 사실상 건물마다 내진설계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법적으로는 내진설계제도가 존재하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재해 제대로 시행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한 교수는 “내진설계 대상을 3층 이상의 건물이 아닌 전체 건물로 확대해야 하며 건물뿐만 아니라 시설물과 외장재에도 내진설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내진설계의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함을 주장했다.
이번 경주지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 위험에서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대규모의 강진이 올 것이라 예고하며 지진대비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국가적 피해가 더욱 클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인터넷에선 지진대비 물품을 준비하라는 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주지진 발생 이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감이 커진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의 재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도움: 공하성<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한상환<공대 건축공학부> 교수
참고 자료: 논문 「필로티형 수직비정형 건물의 정확한 내진설계를 위한 프로세스 개발」
(정진우, 공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사진 제공: 조진학<경북 경주시 28>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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