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삐딱함
[교수칼럼]‘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삐딱함
  • 김용헌<인문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5.30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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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존심이던 두 업체, 미쓰비시 자동차와 다카타 에어백이 침몰하고 있다. 연비 조작 파문으로 경영 위기에 빠진 미쓰비시 자동차는 결국 닛산에 인수된다고 한다. 다카타 에어백도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대규모 리콜 사태로 존폐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와 관련해 어느 일간지는 ‘메이드 인 재팬의 몰락’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두 업체의 몰락 원인으로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실적지상주의, ‘노(No)’라고 할 수 없는 일본 기업들의 집단적 사고, ‘시키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일본 샐러리맨 문화 등을 꼽았다. 두 업체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 설정, 목표 달성에 매몰되어 버린 은폐와 조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목표 설정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 없는 집단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결국 몰락하게 된다는 결론인 셈이다.
4.13총선 결과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집권 여당이 패배했고, 그 책임이 새누리당의 지도부, 더 근본적으로는 청와대에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청와대는 배신의 정치와 진실한 사람을 운운하면서 특정인 죽이기라는 비정상적인 목표를 설정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거나 당대표를 죽이라고 막말을 퍼부은 사람들은 ‘아니오’를 할 줄 모르는 우둔한 신하였다. 당헌과 당규 대신 주인의 뜻에 따라 공천의 칼날을 휘두른 사람은 시키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마마보이쯤 된다. 그들은 주어진 목표의 정당성에 대한 성찰 없이 오로지 하달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성찰이 없고 부정과 비판이 사라진 집단의 예견된 운명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퇴의 변을 들을 수 있었고, 때늦었지만 이른바 옥새 파동의 해프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난 4월 철학과 학생들과 강릉 답사를 다녀왔다. 율곡 선생이 나고 자란 오죽헌이 강릉 답사의 일번지이지만, 강릉향교 역시 꼭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234개나 되는 전국 향교 중에 그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일한 향교이기 때문이다. 향교는 지방에 설치된 국립학교로서 학생을 양성하는 교육 기능과 성현을 기리는 제사 기능을 아울러 갖추고 있었다. 서울의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향교마다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문묘(文廟)가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문묘는 공자의 사당이라는 뜻으로 대성전(大成殿)과 부속 건물인 동무·서무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1948년까지만 해도 문묘에는 133명에 이르는 성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었으나, 현재는 공자와 우리나라 현인 18명을 포함 모두 39명의 위패만이 남아 있다. 94명의 중국 현인들이 문묘에서 철거된 것인데, 이는 대한민국정부 수립 직후 유림회의에서 논란 끝에 내린 결정에 따른 조처였다. 다만 강릉향교만은 유림의 지시를 거부한 채 133명의 위패를 온전하게 모시고 있다. 중국의 현인들을 대폭 줄인 것은 일제와 투쟁하면서 높아진 민족적 자각의 결과이므로 당시 유림의 결단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여러 압력에도 유림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외로운 길을 선택한 강릉향교의 삐딱함도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한다. ‘아니오’라고 할 수 있었던 ‘불량’ 향교가 있었기에 소중한 유교문화의 원형이 온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정의 힘이고 비판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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