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장산곶매]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 정진영 기자
  • 승인 2016.05.30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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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중 일부 -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이름’을 가지게 되면 하나의 ‘꽃’이 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명명(命名)의 과정을 보여주는 김춘수 시인의 <꽃> 중 일부분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 명명 과정을 통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명명 과정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구’라 명명하는 경우, 이성 친구를 사귀어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라 명명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의미 없는 존재가 ‘의미 있는’ 존재로 승격되면서 명명 과정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에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명명하면서 의미를 확장시키고 일반화시키는 것이 더욱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장산곶매에서도 얘기했지만, ‘금수저/흙수저’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일상적인 언어가 되어 버렸다. ‘헬조선’도 그렇고,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남성혐오/여성혐오’라는 말도 그렇게 됐다. 이 신조어들은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들을 간단한 한 마디의 단어들로 명명해 의미를 부여했다. 각 단어들은 전부 다른 사회적 현상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살기 힘들다’고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20대로, 그리고 청년으로 살아가면서 ‘살기 힘들다’는 건 매우 공감하고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는 ‘언어’의 힘도 믿고, ‘반복’의 힘도 믿는다.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힘들다, 힘들다하면 더 힘들어지고, 안 힘들 일도 힘들게 느껴지는 거야.’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사회 진짜 헬조선이야’, ‘페북보면 여혐 분자들 너무 많은 것 같지 않아?’ 등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헬조선, 여혐 등의 신조어로 명명하고 그것을 반복해서 말하며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한탄하고 있다. 가뜩이나 힘든 사회를 부정적인 단어로 반복적으로 말하니 더 힘들게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라도 안하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하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살기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 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청년의 한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언어와 반복의 힘을 믿는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극단적인 ‘헬’이나 ‘혐오’ 등의 말 말고 조금 순화된, 부드러운 말로 명명한다면 그 말을 반복해서 사용해도 그나마 덜 극단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해 명명된 사회 현상들은 정말 우리 사회가 ‘지옥’이라 느끼고, 모든 남성과 여성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왕 살아가는 세상,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지옥’이라 부르고, 몇몇 여성이나 남성이 서로를 싫어해 내뱉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여성혐오/남성혐오’라고 일반화할 수 있는 단어로 명명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함께 살아가는 힘겨운 세상, 조금이라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렇게 하면 힘든 우리 사회도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 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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