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웨딩, 결혼의 판을 바꾸다
스몰웨딩, 결혼의 판을 바꾸다
  • 오현아 기자
  • 승인 2016.05.28
  • 호수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장식 결혼 문화를 탈피하는 젊은 부부들

결혼 당일 신랑과 신부는 메이크업샵에서 의상을 갈아입고 머리손질과 화장을 하며 결혼식장에 가서 웨딩업체가 제공하는 영상과 사진을 찍는다. 식이 시작하기 전 신부는 대기실에 얌전히 앉아있고 신랑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인사한다. 식은 30분만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치러지고, 폐백을 한 후 식사하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니 한 건 없는데 피곤하기만 한 결혼식이 끝난다.

결혼의 ‘의미’가 빠진 결혼식
한국의 결혼식 문화는 매우 획일적이다. 이는 바쁜 신랑, 신부들이 패키지 웨딩, 즉 웨딩업체에서 결혼식을 주관하는 형식으로 식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신랑과 신부의 이름만 다를 뿐, 그 절차는 모든 결혼식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한국의 결혼은 동·서양의 결혼식 문화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 서양처럼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버진로드를 행진하나, 폐백이라는 전통적 결혼식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의식이 하나의 ‘행사’로만 행해지고 있어 결혼의 진정한 의미는 계속해서 퇴색돼오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우리나라 결혼식의 대표적인 문제는 신랑과 신부의 의사보다는 부모님과 주변의 의견이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는 것”이라며 “고가의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나, 혼수 등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이 굳어져버려 결혼식을 하기도 전에 신혼부부들은 큰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몰웨딩의 등장
이런 획일적인 한국의 결혼 문화에 작년부터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바로 ‘스몰웨딩’이 그 주인공이다. 스몰웨딩의 정의는 내리는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규모가 작은 결혼식’을 뜻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문화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연예인 부부의 결혼이 스몰웨딩으로 진행되면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원빈·이나영 부부다. 작년 5월 말, 둘의 결혼식은 강원도 정선의 한 청보리밭에서 일가 친척들만을 모아 조용하게 진행됐다. 화려한 삶의 대명사인 연예인이 유명호텔이나 결혼식장이 아닌 개인의 밭을 빌려 치른 매우 소박한 결혼식은 연일 화제가 됐다. 그 외에도 이상순·이효리 부부, 김무열·윤승아 부부, 정인·조정치 부부 등이 스몰웨딩을 치러, 연예인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향유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 움직임은 일반인 사이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스몰웨딩은 기존 패키지 웨딩에 비해 직접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 시간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만족도가 높아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 라움웨딩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1년 중 가장 결혼식을 많이 한다는 5월에 이뤄진 스몰웨딩 건수는 전년 기간 대비 50% 이상 늘었다. JW메리어트호텔과 롯데호텔서울도 2015년 소규모웨딩이 2014년에 비해 각각 30%, 15% 증가했다고 밝혔다.

▲ 이나영·원빈 부부가 스몰웨딩을 치르고 있다.

스몰웨딩, 무엇이 다른가?
스몰웨딩과 현 결혼식의 다른 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결혼식의 절차가 변화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주례가 사라졌음을 들 수 있다. 주례의 사전적 의미는 결혼식에서 예식을 관장해 진행하는 사람이나, 우리나라에서 ‘주례’가 하는 일은 신랑, 신부가 잘 살아가라는 의미의 주례사를 읊고 성혼이 됐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획일화된 내용의 연설은 많은 하객들과 당사자에게 지루함을 선사할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었다.

반면 스몰웨딩에서 주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신랑, 신부가 결혼 선서를 읽거나 준비한 다른 이벤트를 진행한다. 부모님께 직접 쓴 편지를 읽어드리기도 하며 하객들을 위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는 본인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시키는 말이나 행동만 하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능동적인 주인공의 위치를 탈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혼에 초대되는 하객의 범위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신랑, 신부 양측 모두 최대한 많은 하객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축의금 문화로 인해 부모들은 많은 하객을 선호했다. 부모님 세대에게 결혼식 참석은 진정한 축하의 의미보다는 이전에 받았던 축의금에 보답하는 의무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로 인해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 본인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객으로 가득하다. 또한 하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변질돼 ‘하객 아르바이트’까지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스몰웨딩은 ‘규모가 작은 결혼식’이기 때문에 한정된 인원만을 부를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자신이 정말 축하를 받고 싶은 사람만 초대할 수 있게 한다. 스몰웨딩을 선택하는 부부들은 최대한 많은 하객을 동원해 축의금을 걷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받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혼의 장소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예식장을 벗어나는 예비부부들이 많다. 대량의 하객을 부를 이유가 없어지면서 굳이 전문적인 결혼식장을 찾을 이유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앞서 예시로 든 것처럼, 연예인 부부들이 야외나 작은 식당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장소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펜션이나 레스토랑을 빌려 작은 하우스 웨딩을 진행하는 경우가 등장하고 있다. 

인식 변화가 가져온 결과, 스몰웨딩
스몰웨딩의 출현은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우리 세대에게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이들은 결혼식이 가지는 본질적 의미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자율적이지 않은 결혼은 이들에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김 씨는 “예전 세대들은 한 번하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세대에게 결혼은 ‘평생의 한 번’이 아니라는 의식이 강해졌다”며 성대한 결혼식의 당위성이 무너졌음을 강조했다.

언론에서도 결혼식 허례허식을 빼야한다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부 청사에서도 소규모 웨딩을 장려하는 식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결혼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장년층의 인식도 바뀌고 있는 것 또한 젊은 부부들이 스몰웨딩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문화평론가 김 씨는 “일부 사람들은 무작정 연예인을 따라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차별을 두기 위해 스몰웨딩을 선택하기도 한다”며 “이런 이유로 스몰웨딩을 선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보다는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개인의 신념에 따라 진행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움: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
사진 출처: 소속사 이든나인, 네이버 웹툰 <Penguin loves mev> ‘웨딩 그리고 허니문’ 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