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風이 불고 지나간 자리
힐링風이 불고 지나간 자리
  • 이영재 기자
  • 승인 2016.05.21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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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힐링 기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 중요

‘힐링’이라는 단어가 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시대적 키워드가 됐다. 처음에는 20대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몇몇 자기계발 강사들에게 붙었던 수식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장기 경제침체로 인해 불황이 계속되자 정신 건강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힐링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다. 이후 힐링과 관련된 수없이 많은 책들이 출판돼 나오고 그것이 불티나게 팔리자, TV 토크쇼나 각종 대담에 콘텐츠로 선정되기 시작했다.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를 어느 분야에든 갖다 붙여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힐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 따르면, 주목해야 할 것은 왜 갑자기 힐링이 유행하게 됐는가이다. 힐링은 상처를 치유한다는 뜻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힐링 문화 소비를 늘렸다. 힐링 이전의 추세였던 웰빙에서 힐링으로 바뀐 것”이라며 “웰빙이 주로 육체적인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힐링은 정신적인 삶에서 좀더 나은 삶을 찾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치유보다는 정신적인 삶의 치유, 그것이 힐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서로 뒤엉켜있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일까?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쉽게 우울해지거나, 외로움 혹은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간혹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립과 갈등, 좌절과 실망 등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힐링 열풍이다.
자조를 넘어 분노의 기류마저 엿보였던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젊은 세대의 상처를 보여준다. ‘상처의 치유’라는 점에서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빈곤하게 살아왔다. 바로 이러한 ‘틈새시장’이 대중에 의해 발견되자, 순식간에 힐링 코드는 과수요 저공급의 시장이 되고 말았다. 힐링 시장은 근래에 새롭게 발견된 ‘마음에 관련된 시장’인 셈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힐링 투어, 힐링 카페, 힐링 댄스, 힐링 요가, 힐링 푸드, 힐링 마사지 등 그야말로 힐링이 넘쳐난다. 힐링이란 달콤한 말을 이용해 ‘힐링 마케팅’으로 일반대중의 소비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김 씨는 “지금의 힐링들은 지속성이 없다. 힐링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근본적인 상처나 원인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힐링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김 씨는 힐링 열풍이 마치 2000년대 초반의 아이돌 가수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대중적 팬덤 현상과 크게 닮았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고 전했다. 아이돌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고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역할 모델”로서 떠받들어지는데, 아이돌을 맹신하는 것과 비슷하게 힐링을 맹신하고 맹목적인 환상을 품어 추구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힐링을 통해 수요자는 공급자로부터 자신들이 정말로 원하던 조언이나 마음의 치유를 받아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고, 자신의 내면이 한층 더 성장하게 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힐링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힐링 서비스의 공급자 그 자체가 돼버렸다. 즉, 메시지가 아닌 공급자가 중심이 돼버린 힐링 시장은 사람 자체에 맹목적 환상을 품고 가창력이 아닌 외모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던 과거 팬덤 현상과 상당히 비슷해져 버린 것이다. 의미를 담은 메시지는 사회를 통합하고 동력을 재충전한다. 때문에 힐링의 메시지는 간단하게 취급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힐링 시장은 경제학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수요가 폭증하자 이에 대응해 공급이 폭증했고, 다시 과공급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 시장은 다시 천천히 가라앉으며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힐링 열풍을 단순히 상업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힐링에 열광하는 현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질병[몸]에 대한 치료로서의 힐링’보다는 ‘상처받은 마음[내면]에 대한 치유로서의 힐링’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잡게 된 힐링 열풍을 쉽사리 통제해 순기능을 극대화시키기는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힐링 열풍의 역기능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소박한 젊은이들의 다락방에 ‘돈’이 들어간 순간, 힐링 열풍의 본래 순수하고 깊은 뜻은 변질돼 버린 채 껍데기만 남아서 하염없이 굴러갈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김 씨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순수한 의미로 돌리려면,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대화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듯, 처음에 하던 대화를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메시지 대 메시지의 관점에서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힐링뿐만 아니라 ‘솔루션’도 함께 나와야 한다. 자신의 삶을 성찰할 때, 힐링의 관점과 솔루션의 관점, 기타 다양한 관점들을 선택지로 두고 자유롭게 고를 수 있도록 말이다. 이에 덧붙여 김 씨는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삶이 아니라, 본인이 취해야 할 삶의 태도임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개인마다 힐링을 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멍을 때리든지 컬러링을 하든지, 각 사람마다 맞는 것을 스스로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힐링이나 솔루션은 결국 필요에 맞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보조 수단인 셈이다. 무조건 ‘잘했다, 아팠겠다, 괜찮다’의 메시지를 넘어서서,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건설적인 메시지를 통해 젊은 세대들을 다각도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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