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사설]시스템 바깥에서의 사유가 필요하다
[교수사설]시스템 바깥에서의 사유가 필요하다
  • 한대신문
  • 승인 2016.05.08
  • 호수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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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대결이 우리에게 던진 충격파는 예상보다 컸다. 어쩌면 이 놀라움은 컴퓨터와 인간 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가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아날로그적인 감성 체계와 컴퓨터의 디지털적인 지능 체계의 발전과 진화의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병렬로 연결해 최적의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알파고의 진화 속도를 우리 인간이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인간의 승리를 기대한다거나 그것을 통해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우월함을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소박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을 세기의 대결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이미 패배가 예견된, 서로의 그레이드가 다른 두 존재의 경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언론 매체들은 인간이 알파고와 싸워 패배한 것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존재성 전체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 인간은 알파고가 온전히 지니지 못한 다양한 감정이나 반성적인 인식 능력(자유 의지나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며, 컴퓨터와 같은 인공지능이 온전히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는 영역들이다.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서는 아니지만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이나 체계가 우리 인간의 정체성을 흔들 정도로 이미 깊숙한 곳까지 점령해 들어와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 이 시대의 인식과 존재 전반에 어떤 변화와 불안의 징조를 드리우고 있다. 그 징조 중의 하나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사유이다. 어찌 보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또 허무에의 의지 같아 보이기도 한 이 성찰이 소중한 것은 ‘존재에 대한 망각’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영화 「매트릭스」에서 이 망각의 위험성을 깊이 체험한 바 있다. 매트릭스가 가상세계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매트릭스의 견고한 구조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성을 상실한 채 자신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고 통제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삶이란 결코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가 가상세계라는 것을 자각하려는 치열한 실존적인 모색이 있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시온’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기계(시스템)와 목숨을 건 격전을 벌이는 네오와 모피어스, 트리니티 등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실존적인 자각과 실재하는 존재에 대한 망각의 회복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반성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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