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로]분주한 이에게
[진사로]분주한 이에게
  • 이현복<인문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5.08
  • 호수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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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공허하고 변화무쌍한 ... 변덕에 쫓겨 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곤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목표를 전혀 세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하품만 하다가 느닷없이 죽음의 포로가 되지요. 그래서 나는 가장 위대한 시인의 신탁 같은 말이 진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우리가 사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인생이 아니라 그저 시간일 따름이지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외치며 인간의 단명을 한탄한 힙포크라테스에게 세네카는 말한다. “짧은 수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명을 넉넉히 타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수명을 낭비하는 것이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경~기원후 65년)는 33년 재정관으로 임명되어 현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탁월한 연설로 로마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철학자이자 웅변가이고 작가였다. 12세의 네로를 만나 17세에 황제가 되기까지 지적 스승의 역할을 자임했으며, 네로 황제 초기 5년 선정을 베푸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65년 제자 네로로부터 “세네카는 즉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명을 받자 흐느끼는 동료들을 나무라며 흔들림 없이 자결한다.
이런 그가 돈, 명예, 권력 그리고 쾌락에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우리 일상성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계부를 쓰며, 얼마나 오랫동안 음모를 꾸미며, 얼마나 오랫동안 아첨의 말을 하거나 들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담보하거나 남을 위해 담보를 제공하는 데 쓰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제는 일상 업무가 되어버린 주연에 쓰는지 살려보란 말이오. 그들이 하는 일들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들에게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그는 ‘일 없이 분주한 삶’을 탓하며, 분주한 자들이야말로 사는 것에 가장 관심이 적은 이들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노철학자는 말한다. “내 말을 믿으시오. 자신의 시간을 조금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인간적 과오를 초월한 위대한 사람이나 해낼 수 있는 일이오. 그리고 그의 인생이 가장 긴 까닭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든 그것을 모두 자신을 위해 비워두기 때문이지요. 주어진 시간 가운데 놀리거나 이용하지 않는 것은 조금도 없으며, 남의 지배를 받는 법도 전혀 없지요. 왜냐하면 주어진 시간을 가장 알뜰하게 관리하는 그는 자신의 시간과 맞바꿀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에게는 주어진 시간이면 충분한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사람들에게 많이 빼앗긴 자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요.”
분주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인생은 남에게 맡겨진 것도, 이리저리 흩어진 것도, 우연에 맡겨진 것도, 소홀해서 사라진 것도, 선심으로 낭비된 것도, 남아도는 것도 없다고 세네카는 말한다. 그들의 삶이 짧다 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위해 자신이 요구하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는 세네카의 말, 새해와 새봄 그리고 새학기를 맞이하는 분주한 이의 가슴에 깊숙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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