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문학의 요정, 강백수 밴드의 강민구
음악과 문학의 요정, 강백수 밴드의 강민구
  • 한소연 기자, 윤성환 수습기자
  • 승인 2016.05.07
  • 호수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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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밴드의 강백수씨를 한 카페에서 만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자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 한창 잘 나가던 삼십 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 거야. 아버지 육 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그는 2008년 「시와 세계」로 등단한 시인이다. 몇 달 전 필자가 감명 깊게 본 영화 <동주> 때문이었을까, 시인은 늘 조용하고 사색을 즐기며 묵묵히 자신만의 세상 속에 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편견은 멋진 선글라스와 빨간 스쿠터를 타고 등장한 그의 모습을 본 순간 깨져버렸다.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이는 그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20살, 글쓰기를 사랑한 청년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다. “사람이 뭔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소한 칭찬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글을 잘 쓴다는 사소한 칭찬이 쌓이다 보니 글 쓰는 일에 애착이 생겼죠.”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곧잘 들어왔던 그는 앞으로 뭘 하게 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이 좀 더 잘하는 부분을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 생활은 어땠을까. 그의 말에 따르면 과에서 술을 제일 많이 먹는 학생이었고, 시끄럽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님께서 혀를 끌끌 차시며 “저 놈, 백수 광부(‘공무도하가’에 나오는 흰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사람) 같은 놈”이라고 하셨고 그것이 인상 깊었는지 백수 광부의 ‘백수’와 흔히 알고 있는 백수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아 ‘강백수’라는 예명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강백수’만큼 그를 잘 표현할 예명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대학원 석사 수료 후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학사까지 마치는 뮤지션들은 흔하지만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밟는 뮤지션은 생소했다. “저는 저를 뮤지션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그냥 악보에다 뭔가를 쓰는 사람이죠. 그러려면 ‘글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더 알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석사 수료를 했는데도 열심히 안 해서 그런지 글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박사 과정을 밟게 됐어요”라고 하는 그의 말에서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하헌재 때문이다’
‘내가 참치 못 사먹고 참치김밥 먹는 거 하헌재 때문이다. 돈 천 원 아끼려고 원조김밥 먹는 거 하헌재 때문이다..’
그의 음악 중 단연 인상 깊었던 곡은 바로 ‘하헌재 때문이다’이다. 그 곡에 등장하는 하헌재 씨는 그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데, 그 시절 ‘록(rock)’이라는 공통 분모가 그 둘을 묶어 놨다고 한다. 먼저 고등학교 밴드부 생활을 하고 있던 하헌재 씨는 그에게 밴드를 하면 옆 여고에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유혹했고,  그 계기로 그의 음악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것이다.
사실 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 전의 일이라고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체구도 작고 당돌한 면이 없어서 누가 괴롭혀도 뭐라고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그는 한 록밴드의 공연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것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느날 한 밴드의 무대를 동영상으로 보게 됐어요. 그 밴드들이 무대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객기도 부리고, 소위 말하는 진짜 날라리 같았죠. 사람은 정반대의 것에 끌리게 돼 있거든요. 밴드들의 대책 없고 겁 없는 모습이 제가 가지지 못한 모습이라 동경하게 됐어요. 그런 걸 해보고 싶었던 거죠.”

처음 '하헌재 때문이다'라는 곡을 들었을 때 기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몇 번 더 들어보니 마음이 아팠다. 돈이 없어 십, 이십만 원에 쩔쩔 매는 것, 비엠더블유 못 타고 똥차 타는 것 모두 하헌재 때문이라는 가사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고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필자는 예술의 영역은 취미로 할 때는 즐겁지만 이것이 자신의 밥벌이가 돼야 한다고 하면 쉽게 부담을 느끼고 흥미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하는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담을 느껴 음악과 멀어지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취미가 스케이트보드 타기인 거예요. 그것이 직업이 된다면 그걸 맨날 타야 하는 거죠. 안 타고 싶은 날이 있을 수 있는데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타야 해요. 그런 것처럼 저도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비가 오고 눈이 와서 안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럼 과감히 음악을 안 들어요.”
평소 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는 늘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싫증이 났음에도 ‘이것은 나의 취미(혹은 일)니까 싫증이 나서는 안 돼’라고 강압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필자에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부담이 느껴지면 잠시 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좋은 가르침으로 다가 왔다.



지긋지긋한 일상을 담다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라는 그에게 작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시를 쓰고 가사를 쓰는 일 말고도 산문집 「서툰 말」과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사축 일기」를 펴내기도 했다. 그의 글을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의 일상을 재치 있는 문장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는 느낌을 줄곧 받는다.
매력적인 문장을 만드는 그가 글을 쓸 때 영감은 어디서 받는지, 또 글을 쓸 때 추구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주로 술자리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가 하는 말 중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주제 거리가 있어요. 어느 순간에 ‘어? 이 이야기를 내가 또 하고 있네? 아, 내가 이 생각을 자주 하고 있구나. 이런 건 한 번 글로 써봐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라는 그는 음악의 경우에도 서사지향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글이라는 수단은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매우 불완전한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글을 음악과 결부시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온전히 담긴 그의 글 속 일화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즉, 그의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고 느낄 수 있는 친숙한 것들이다. 글을 쓸 때, 특별한 순간을 주로 담는 필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인생은 행복한 순간과 지긋지긋한 시절로 구성된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순간은 점처럼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가는데 지긋지긋한 것은 선처럼 긴 여정이죠. 행복한 순간은 혼자 즐기고 싶고, 저는 지긋지긋한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라며 “얼마 전 이재복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께서 추하다는 것은 미의 반대말이 아니라 미에 속해있는 단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주로 담는 지긋지긋한 일상이 비록 추할지라도 아름다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지긋지긋한 일상을 글로 담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자신이 추구하는 글의 색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도 했다. “내가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지 3인칭으로 바라보거나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새삼스럽지 않은 평범한 일상도 3인칭화 된 글로 보면 새삼스럽다고 느껴지죠. 그런 의미에서 ‘생활의 발견’이라는 말은 글을 쓰는 저에겐 가장 큰 화두인 것 같아요.”


  • ‘아이 해브 어 드림’
    '내가 만약 십억 원이 생긴다면 십억 원 어치 술 사먹을 거야이야...내가 만약 김태희랑 사귄다면 김태희 델꼬 술 사먹을 거야이야..."
    최근 ‘강백수의 난’이라는 전국투어가 끝이 났다. 음악가로서 활발한 그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 세 번째 책이 나올 것 같다고 했으며, 뮤지션으로서 앨범을 내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 중이라고 했다. 그의 계획을 들으니 ‘음악과 문학의 요정’이라는 그의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음악이든 문학이든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지막으로 ‘웃픈’ 삶을 사는 청춘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말로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우리의 인생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많은 부분을 투자하며 살게 될 것이에요. 중요한 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 매몰돼서 하고 싶은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 거예요”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특별히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기 보다 자신을 좋게 봐도 좋고, 나쁘게 봐도 좋으니 어떤 사람으로든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말은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 것 같은 그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글·사진 도움 윤성환 수습기자 wgysh11@hanyang.co.kr
    사진 제공: 싱어송라이터 강백수(강민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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