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지나친 대학 군기 문화, 모두의 의식이 필요하다
[장산곶매]지나친 대학 군기 문화, 모두의 의식이 필요하다
  • 정진영 기자
  • 승인 2016.05.01
  • 호수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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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학의 군기 문화에 대해 다뤘고 이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에는 방송에 나온 대학들이 어디인지를 묻는 게시글들과, 아직도 대학에서 군기를 잡느냐며 해당 대학의 문화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는 방송에 나온 몇몇 대학만의 문제는 아닌 듯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방송 다음 날 페이스북 ‘한양대 에리카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 ERICA캠퍼스 예체능대의 군기 문화에 대해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실 앞서도 말했듯이 대학의 군기 문화는 특정 몇몇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에는 3개 대학만이 언급됐지만 그와 유사한 문화를 가진 대학의 수는 그리 적지 않다. 필자의 친구만 해도 신입생 OT에 가서 영문도 모르는 채 여학생들은 선배들로부터 욕을 들었고 남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빠따’를 맞았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가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모든 군기 문화는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선배를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선배를 깍듯이 대하는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 이뤄진다. 후배가 선배를 존경하는 마음도 좋고, 예의 있게 행동하는 것 모두 좋다. 그런데 왜 예의와 존중은 한 방향으로만 이뤄지는 것인가. 예의와 존중은 상호 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오지 않았던가. 지성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기본적인 예의범절의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지성인’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달 자격이나 있는 것일까.
군기 문화는 ‘상명하달(上命下達)’을 핵심축으로 한다. 그러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발전해나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젊은 머리들이 모여 있는 대학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인터뷰이들도 그랬지만 이러한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물으면 관련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예전에 비하면 완화된 것이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부채가 1억에서 5천만 원으로 줄었다고 내가 지고 있는 부채에 대한 짐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 있다.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언제나 안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완화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하고 칭찬을 해줘야 하는 것인가?
SNS가 발달하면서 면대면으로는 하기 껄끄러운 이야기들을 익명의 힘을 빌려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익명’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진실성 여부가 의심받는 경우도 많고, 악의적으로 작성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군기 문화처럼 선배나 교수에게 직접 토로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SNS의 페이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좋게 평가할 만하다. 말하기 어려워서, 보복이 있을까봐 망설였던 이야기들이 익명의 힘을 빌려서라도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이에 대해 사회가 주목하고 비판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아직도 과거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아 실행하느냐’고 비판한다. 악습을 행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비판의식을 가지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당했으니 너희도 당해봐’나 ‘우리가 당했던 것에 비하면 너희는 약과지’하는 생각으로 악습을 행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문제제기했다가 학교생활하기 힘들어지면 어쩌지’, ‘그냥 나 하나만 참으면 돼’라는 생각으로 악습을 묻어둬서도 안 된다. 잘못된 것은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불이 큰 산 하나를 태우듯이, 방치해두면 더 깊이 곪아 썩어들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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