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가고있다
나는 죽어가고있다
  • 한소연 기자
  • 승인 2016.04.02
  • 호수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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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다.” 독일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하이데거가 남긴 말이다. 그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죽음에 다가간다는 의미보다는 인간은 ‘죽음’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이며 죽음을 인지한다는 것은 삶의 가치를 안다는 것의 방증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필자가 과거에 들은 한 강의에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느냐’는 교수의 질문에 손을 든 학생은 백여 명 중 겨우 서너 명뿐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과연 매 순간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가? 숭고한 이성을 가진 우리 모두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죽음, 그 두려움에 대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죽음은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 죽는 일, 끝장’이다. 이는 삶의 끝(사건), 죽는 일(행위)을 포괄한다. 즉, 죽음이란 인생에 닥치는 사건이면서도 인간이 수행해야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닥치는 사건이면서도 수행할 행위인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숫자 4(四)자도 ‘F’로 표기돼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死)와 동음어인 사(四)를 피하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의식적으로든 그 반대든 ‘죽음’에 대해 부인한다. 이런 현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유학, 도교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아시아 사상은 죽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공자의 제자가 죽음에 대해 묻자 “아직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는 대답을 한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서양 사상이라고 다르지 않다.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학파는 전생이나 이승에서 저지른 업보가 죽음이라 여기며, 이에 달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스피노자는 죽음에 대한 사색 자체를 거부했다.
안타깝게도 죽음에 대한 부인은 현대인들에게서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 자체에 대한 고통이 무서운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무서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은 막연히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또 죽음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멀리 있는 일이라 생각해 인지하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다. 그 밖에 의학 기술의 발달로 죽음의 물리적 극복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끊임없는 쟁취와 성취에 대한 압박을 주는 자본주의 사회다. 이 사회가 한 개인에게 ‘기필코 전진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요했기 때문에 죽음을 망각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죽음을 말해야 하는가?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굳이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에 오영석<북경대 의예과 09> 군은 병원에서 2년간의 실습을 하며 겪은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실습 중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를 보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것 대신 인생의 남은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채우길 바랐고, 서로를 위로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에 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오 군은 “그 이후 중환자실에서 매일 차가운 산소호흡기로 위태롭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이 환자분들은 과연 죽음 앞에 스스로 준비된 분들일까? 어쩌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할 기회도 없이, 차가운 병동에서 쓸쓸히 누워 계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라고 말하며 당시의 생각을 전했다. 과거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침착하게 죽음을 준비하던 환자와, 죽음을 미처 준비하지 못 한 채 누워있는 환자를 대비해 보며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오 군은 “죽음이 나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준비하는 태도는 뜻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표인 것 같다”라고 말하며 말을 마쳤다.

삶의 연장선으로서의 죽음
베스트셀러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집필한 셀리케이건은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E.M.포스터는 “죽음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그를 구원한다”고 했다. 죽음은 인간이 접하는 가장 짙은 어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죽음을 인식한다는 사실은 삶이 아주 귀중한 것이며 반복될 수 없는 소중한 여정임을 깨닫게 만든다. 즉, 죽음을 바탕에 두는 것이 곧 ‘인간적’ 삶의 실현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에게 다시 묻고 싶다. 우리는 과연 매 순간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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