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경험을 담아 공감을 전하다
음악에 경험을 담아 공감을 전하다
  • 한소연 기자
  • 승인 2016.03.19
  • 호수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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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야식 배달부 테너’, ‘한국의 폴포츠’로 잘 알려진 성악가 김승일 씨(이하 성악가 김 씨). 그는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으며 다양한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생계의 어려움으로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이후 약 10년간 성악을 떠나 택배기사, 야식배달 일을 하며 힘든 생활을 하던 중 7년째 함께 일하던 야식집 사장의 제보로 2010년 12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했다. ‘노래하는 배달부’라는 감동적인 사연과 뛰어난 성악적 재능이 시청자에게 알려지면서 방송 직후 시청자 게시판에 시청자 의견이 폭주했고, 그의 미니홈피에는 일시에 7만 명이 방문하는 등 그의 등장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방송 출연 이후 자퇴했던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재입학하게 되면서 성악을 다시 공부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0년 만에 졸업을 했다고 한다. 굴곡 있는 그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음악가로서의 시작
그는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하기 전부터 여러 가요제에서 대상을 탄 경험이 있다고 했다. “옛날 라디오 중에 이문세 씨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프로그램 속 연례 행사였던 음악경연대회에 우연히 출연했는데 그 대회에서 대상을 탄 거예요. 상을 받으니 가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 당시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진행했던 음악경연대회는 김건모, 이수영 등 스타를 배출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 무대에서 대상이라니, 그의 음악적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어머니께서 목소리가 정말 아름다우셨어요. 노래도 잘 부르셨죠.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 밑에서 나고 자라다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졌어요”라며 늘 음악과 함께였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목소리도 좋고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던 그는 자연스레 음악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학창시절 ‘카루소’라는 곡을 듣고 성악에 꽂혔다. 왜 하필 ‘카루소’였을까? “음악이 좋은 데에 이유가 있나요? 그냥 끌렸어요.” 그렇게 그는 성악가가 되기 위해 성악과에 입학했다.

성악과 대중가요, 그 사이
기자는 과거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틀어주는 유명한 가곡들을 들을 때면 혀를 이리 꼬고 저리 꼬는 가사가 신기하다며 정신없이 웃기도 하고 지루해서 잠을 자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대부분 성악곡이 친숙하지 않을 것이다. 성악의 어떤 매력이 그의 귀를 사로잡았을지 궁금했다. “대중가요는 서민들 중심으로 향유되는 음악이에요. 반면에 성악곡은 귀족의 삶을 대변하거든요. 생각해 보면 귀족들의 삶을 대변하는 이야기에 마치 제가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던 것 같아요. 

물질적인 풍요와 권력, 명예욕을 곡을 통해 실현시키고 싶었습니다”라며 성악곡의 매력을 말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보면 대중가요는 그 가수나 곡의 개성이 좀 더 중시되기 때문에 곡의 느낌이나 가수의 개성에 따라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 폭넓게 인정된다고 한다. 반면 성악곡은 그런 면에서는 폭이 좁지만 자기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재된 맑은 소리를 오롯이 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션을 써서 공동으로 작업하는 대중가요보다는 목소리 하나가 악기가 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성악에 더 마음이 간다고 밝혔다. “웅장한 코러스와 오케스트라로 감동을 주긴 쉽지만 목소리 하나로 감동을 주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거든요. 그래서 성악가 특유의 깊고 맑은 소리, 원초적인 그 소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운의 천재였던 과거의 김승일
천부적인 재능으로 음악 인생을 걸어온 그에게도 큰 시련이 있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 태평하게 음악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자퇴를 결심했다.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제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시절에 이직만 15번 이상을 했어요. 심지어 억 단위의 빚을 지기도 했죠. 하지만 가장 큰 시련은 빚의 액수나 실패가 아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죠”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벌었던 돈들은 결국 음악을 하기 위한 거였어요. 15번이라는 실패는 그저 음악을 위한 시행착오들이었죠. 수없이 직업을 바꿔도 결국에는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는 사회생활에 미숙했고 패기만 가득했던 자신의 모습을 추억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기자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도전을 망설였던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반면 그는 수많은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계속 되는 실패에도 패기 있게 꾸준히 도전한 그 힘은 어디서 왔을까. “저도 자존감이 많이 낮았어요. 그런데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건 무모함, 순진함 때문이었어요”라며 “제가 얼마나 무모했냐면, 성공하고 싶은 욕구는 컸는데 저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성공’이라고 쓰여 있는 책 50권 정도를 사서 고시원에서 읽기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착각이 시작된 거예요.” 그는 ‘착각의 힘’을 강조했다. 성공에 관련된 책을 읽다보니 마치 자신이 성공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고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착각은 환상이며 허무함을 주기 때문에 안 좋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착각이 ‘난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고 도전의 원동력을 제공했다는 그의 지론은 ‘착각’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생의 전환점, 경험이 준 선물
기자는 성악가 김 씨의 인생의 전환점이 ‘스타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그 당시엔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저의 진정성과 간절함, 그리고 치열했던 저의 인생이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 웃음거리로 치부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출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감동했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아, 내 간절함이 전해졌구나’ 싶었어요”라며 당시의 느낌을 회고했다.
이후 그에게 수많은 별명이 생겼다. ‘한국의 폴포츠’, ‘야식배달부 테너’ 등 다양했지만 그 중 ‘희망 전도사’라는 별명이 기자의 눈에 띄었다. 희망을 전하는 그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는 희망의 높낮이를 잘 조절하는 것 같아요. 사람은 욕심이 많고 바라는 것이 많아서 목표 자체를 높게 두는 경우가 많아요. 이상은 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열등감이 쌓이죠”라며 “희망을 조절할 줄 알면 자연스럽게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목표를 높게 잡고 무작정 달려가는 사람은 그 욕심이 결국 자신을 끌어내릴 거예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희망을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팁이 무엇인지 물었다. “희망을 어느 정도 높이고 줄일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아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해요”라고 말하는 그는 ‘내 목표 수치는 10인데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에너지는 5’라고 가정한다면 희망의 수치를 낮추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에너지 내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걸 빨리 파악한 사람은 자신이 설정한 위치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경험치를 쌓고 있을 것이며 그렇게 쌓인 경험들은 아주 강력한 무기가 돼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인간 김승일과의 공감과 소통
노래를 부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과거에는 자기 자신을 뽐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면 현재는 나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과 공감을 하며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 마디로 과거엔 ‘자랑’이었다면 지금은 ‘공감’입니다”라는 그는 관객들과 공감을 위해 노래로의 소통에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제가 원래 대중가요를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대중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그런데 대중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전달을 넘어서 공감이 필요해요.”
그의 20대 시절이 힘들었던 만큼, 현재 힘든 삶을 살아가는 20대 청년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비정규직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갈 때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를 보며 본인의 처지를 비관했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직장에 다니진 않아도 새로운 걸 추구하며 도전하는 삶이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는 그는 “과거엔 주변에서 성공한 친구들의 소식이 제 자신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남들보다 뒤쳐지는 시기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라며 “가끔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마음을 비우고 다시 도전해서 새로운 희망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들보다 늦은 것 같지만 자기 자신을 파악하기 위한 경험들은 결국엔 가치 있는 나를 만들겁니다”라고 전했다.
말을 마치고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리고 ‘넌 왜그래? 이상해’라는 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남의 시선에 본인의 꿈을 억누르지도 마세요. 자신의 꿈에 대한 에너지의 양이 크다면 그런 시선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에게 얻은 대답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충실하고 정직하고 진실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타킹 출연 이후에 여러 곳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 고심 끝에 거절했던 경험이 있다는 그는 자신의 삶에 가식적이지 않고 매 순간에 충실한 것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한 그것이 그 순간엔 힘든 결과를 낳을지라도 미래에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음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성악가 김승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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