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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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가은 기자
  • 승인 2016.03.12
  • 호수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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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숨은 뒷이야기, “학예연구사”

박물관의 숨은 뒷이야기, “학예연구사”
전시물이 박물관의 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림을 보고 화가의 삶을 떠올리는 미술 작품과는 달리 박물관 속 작품의 작가에 대한 이해는 줄곧 잊혀왔다. 그 작가가 바로 학예연구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과물만을 세상에 내놓는, 안범철<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를 만나 박물관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박물관, 하나부터 열까지
종합 박물관은 서로 다른 분야의 학예연구사가 두 명 이상 있어야 법적으로 인정된다. 자연사박물관 같은 전문박물관의 경우엔 한 분야의 학예연구사만 있어도 된다. 안 학예연구사가 몸담은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의 경우 학예연구사는 그를 포함해 총 두 명이다.
박물관의 일은 곧 학예연구사의 일이다. 보통 수집을 학예연구사의 주 업무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업무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일은 이보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다. 학예연구사는 수집된 표본으로 연구를 하고, 연구된 자료로 전시를 하고, 전시된 품목으로 교육을 한다. 교육은 아이들, 대학생, 전문가를 모두 포함하며 박물관은 이런 하나의 사이클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운영하는 이가 바로 학예연구사다. 그뿐만 아니라 학예연구사는 박물관의 행정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수익 구조를 내지 않는 박물관의 특성상 인력이 많이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 학예연구사는 전시 기획과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예산, 인사관리 등의 잡다한 행정 업무도 모두 처리해야 하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물관의 꽃, 전시
전시물의 수집은 학예연구사의 육체적 노동으로 얻어진다. 식물 분류학을 전공하는 안 학예연구사는 식물을 채집하기 위해 직접 산을 타기도 한다. 채집해야 할 표본이 생기면 먼저 해당 식물이 우리나라 어디에 분포하는지, 어느 시기에 채집하는 게 가장 좋은지, 법적으로 채집이 허용되는지 등을 알아본다. “식물이 저절로 저한테 오진 않잖아요”라고 말하는 안 학예연구사는 이 모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꽃이 피는 시기나 종자 결식기에 맞춰 산을 오른다. 그렇게 채집한 표본은 연구실로 가져와 건조 작업에 들어간다. 건조기에 들어가 완전히 마른 표본을 떨어지지 않게 종이에 부착하고, 그 밑에 정보를 담은 라벨을 단다. 이 라벨에는 표본의 국명, 학명, 분류체계와 채집한 장소, 채집한 이, 채집한 날짜 등이 기록된다. 이 기록은 표본의 목록에 포함되고 관리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그 후 소독 작업을 한 번 거쳐 스캔을 통해 전산화된다. 학예연구사는 이 전산화된 표본을 연구에 이용하거나 전시로 내놓는 것이다.
전시물의 관리 또한 학예연구사의 손길 아래에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온 전시물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표본의 손상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빛과 습도다. 온전한 보존을 위해선 그 둘이 표본으로부터 차단돼야 한다. 그러나 잘 보여야 하는 전시물의 특성상 빛의 완전한 차단은 불가하므로 최소한의 빛을 사용하고 습도를 제대로 조절해야 한다. 표본이 마른 상태일 땐 부패가 일어나지 않지만 습기를 많이 머금을 땐 그로 인한 미생물들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이때 부패가 일어나기 때문에 습기를 최대한 차단해줘야 하는 것이다.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의 경우 주로 종 분류에 따른 전시를 하고 있다. 고니와 큰고니는 이름도 생김새도 유사해 같은 종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습성과 생김새가 미세하게 다르다. 따라서 둘은 같은 종이 아니므로 교미를 할 수 없다. 이것이 둘을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하는 결정적 차이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전시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학예연구사의 몫이다. 또한 그 선택에는 이렇다 할 답도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종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에 관한 전시를 할 수도 있고, 물에서 사는 포유류와 하늘에서 사는 포유류를 구별해 전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학예연구사로 사는 삶
“후배들에게 함부로 학예연구사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그가 말을 이었다. 힘든 길이 예정되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수익을 내는 곳이 아니므로 종종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인력난에 허덕인다. 그러나 인터뷰 직전까지 전선 수리를 하다 왔다는 안 학예연구사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얼마나 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백 퍼센트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꿈꿔왔던 것은 아니다. 학부와 석사, 박사를 모두 식물 분류학으로 전공한 그는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던 중에 우연히 학예연구사로서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한정된 예산과 인력난으로 인한 잡다한 업무 처리 등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 그지만, 기획 전시를 맡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3개월 동안의 전시를 위해 6개월을 준비해야 하는 고단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혼자 공부하고 기획한 결과물인 전시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 가장 보람차고 즐겁다고 했다. 관람객이 방문해 학예연구사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는 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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