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즐기지 못한다면 'FAKE'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면 'FAKE'
  • 이승진 기자
  • 승인 2016.03.12
  • 호수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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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간 모태솔로였던 대학생 K양은 최근 남자친구가 생겼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11시에만 만날 수 있는 K양 남자친구의 이름은 1인칭 연애 시뮬레이션 콘텐츠인 ‘내 손안의 남자친구’다. 당신도 한 번쯤은 K양처럼 ‘가짜’소비를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최근 실제로 이런 소비를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페이크슈머(Fakesumer)’라 일컫는다.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페이크슈머
대학내일의 부설연구기관인 대학내일 20대연구소에서 집필한 도서 「2016 S/S 20’s TREND REPORT」에 따르면, 페이크슈머란 가짜를 의미하는 영단어 ‘페이크(Fake)’와 소비자를 뜻하는 영단어 ‘컨슈머(Consumer)’가 결합돼 만들어진 신조어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시간과 돈이 부족한 20대들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가상에서 채우기 위해 패션, 뷰티, 여행부터 인간관계까지도 ‘가짜’로 소비하는 새로운 소비 성향을 가진 이들을 의미한다.

임희수<대학내일 20대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소비형태가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으로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취업난으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들었다. 20대 청년들은 큰 책임감이 따르는 선택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브랜드가 떨어지더라도 비슷한 성능이나 디자인을 갖췄다면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최대한 줄이고자 보다 저렴한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에 임 연구원은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는 정품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비슷한 만족을 준다면  대체품(가짜)을 구매하는 소비로까지 세분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페이크슈머들의 소비 형태는 크게 ‘가짜(정품이 아닌 대체품)’와 ‘가상(진짜 현실이 아닌 virtual reality)’ 분야로 나뉜다. 첫 번째로 ‘가짜’ 분야는 정품이 아닌 소위 ‘짝퉁’으로서, 작년 여름 유행했었던 나이키 무정부 티셔츠나 명품백 일러스트가 그려진 에코백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소위 ‘저렴이’라고 불리는 제품들은 ‘고렴이’ 본품과 유사한 기능 또는 디자인으로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한다. 두 번째로 ‘가상’ 분야는 한 마디로 ‘기분만 내는’ 체험을 말한다. 캠핑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캠핑 카페, 웨딩드레스를 대여해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웨딩 카페 등이 대표적인 예로서, 실제가 아닌 컨셉이 마련된 장소에서 가상 체험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소비 형태다.


실제로 우리들은 이런 소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을까? ‘페이크슈머’의 소비형태에 대해 설명한 후, 한양대학교 학생 3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약 48%에 해당하는 156명의 학생들이 페이크슈밍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가짜’ 소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소비한 항목은 무엇일까?

조사 결과, 페이크슈밍을 해본 적 있는 항목은 표①과 같이 나타났으며 외모를 가꾸는 ‘뷰티’ 항목에 상대적으로 많이 치중돼 있었다. 또 ‘해본 경험이 없음’을 선택한 학생들이 앞으로 페이크슈밍을 해보고 싶은 항목은 표②와 같았다.

학생들이 관심있는 분야 중에서도 대다수가 선택한 것은 상대적으로 고비용인 ‘여행’ 항목이었다. 이와 함께 페이크슈밍을 하는 이유로는 표③과 같이 집계 됐으며 기타 이유로는 ‘현실과 색다른 느낌이 오히려 매력적일 것 같아서’,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일 것 같아서’ 등의 의견이 있었다.

조사결과와 관련해 임 연구원은 “페이크슈밍의 원인이 ‘비용 절약을 위해서’가 가장 높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며 “가장 많이 경험해 본 페이크슈밍 분야가 뷰티 분야라는 점에서, 학생들이 평소 미용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가짜’ 아이템을 심심찮게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요즘 대학생들은 유사한 경험 소비를 위해서 보다 저렴한 비용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인데, 선택에 따른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소비 방어기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이에 임 연구원은 “대학생들의 경우, 아무래도 금전적인 제약이 있다보니 정해진 예산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얻기 위한 합리적인 소비 방식을 찾아낸 것이 페이크슈밍이다”라고 분석했다.

페이크슈밍, 주의할 점과 앞으로의 전망은?
한편, 임 연구원은 이런 소비를 남발할 경우에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기타 유의사항으로 “소비가 일시적인 기쁨을 위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 우선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선호한다거나,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서 2차적으로 만들어진 가상 경험만을 소비하는 것은 기회비용이 적은 만큼, 그로 인한 만족감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싼 제품일수록 구매에 신중해지는 페이크슈머들이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의 페이크슈밍 시장에는 브랜드를 앞세우는 전략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오히려 실기능 위주의 제품이 세련되고 트렌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미리 체험해보는 사전 체험(시뮬레이션) 서비스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임 연구원은 앞으로의 젊은 페이크슈머들에게 “현명한 페이크슈머라면, 가짜를 구매해야 할 때와 진짜 경험을 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해서 소비할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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