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다
세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다
  • 이영재 기자
  • 승인 2015.11.28
  • 호수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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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저녁 TV를 틀면 MBC에서 8시 정각에 맞춰 시작하는 뉴스를 볼 수 있다. MBC 뉴스 중 시청률이 가장 높은 MBC 8시 뉴스데스크는 남녀 한 쌍의 앵커가 진행한다. 그중 여자 앵커의 이름은 배현진<보도국 국제부> 앵커(이하 배 앵커). 그녀는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 베스트 스피커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2008년 MBC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아나운서국 아나운서로 방송국 활동을 시작하고 2011년 공명선거 홍보대사를 거쳐 2014년 MBC 보도국 국제부 기자로서 언론인의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5시 뉴스데스크에서 주말 뉴스데스크로, 그리고 현재는 8시 뉴스데스크에서 뉴스를 전하고 있다.

MBC 뉴스의 중심
상암동 MBC에 처음 가본 기자는 상암 디지털 미디어시티의 언론사들을 구경하느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높은 건물들, 연예인이 타고 있을법한 커다란 차, 여러 종류의 방송 카메라들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여기서 일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MBC 안에 들어가 배 앵커를 만나기 위해 7층 앵커실로 향했다. 배 앵커와의 첫 만남은 독특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직원들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배 앵커가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급박한 상황에 약간 당황해있는 기자에게 그녀는 먼저 다가와 웃으며 인사해줬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뉴스 녹화실로 향했다. MBC에 들어오자마자 8시 뉴스데스크 예고 녹화에 참관하게 된 기자는 뉴스라는 방송의 위압감에 긴장했다. 그러나 차분하고 카리스마 있는 배 앵커의 목소리와 분위기에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 장소에 기자를 앉히고 직접 차를 타주며 반갑게 다시 인사했다. 기자와 배 앵커가 만난 시간은 6시였고 8시에 뉴스데스크 생방송이 있었다. 바쁘진 않을까 걱정하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오히려 미안해했다. “원래 이 정도로 정신없지 않았는데 요새 개편하고, 새롭게 추가되는 코너가 생겨서 바쁘네요”
기자의 뒤에 있는 TV에서 조금 전 녹화했던 영상이 방송되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차분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장래희망 칸에 아나운서 외의 직업을 적어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노력이 궁금했다. “제가 존경했던 아나운서들의 말씨나 행동을 많이 따라했어요. 좋아하는 앵커가 어떤 앵커멘트를 하는지 매번 녹음해서 듣고 따라 하고 전략적으로 공부했죠. 아나운서 같다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머리도 단발로 잘라보고 아나운서처럼 옷도 입어 봤어요. 그리고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아나운서가 될 수 있냐고 묻기도 했어요. 다른 길을 생각해보라고 권유하시는 교수님들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더 노력했어요”
배 앵커는 대학토론대회 대상,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 베스트 스피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아나운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대회이지만 그녀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학교 게시판에 교내 토론대회가 열린다고 붙어 있는 거에요. 그게 정말 제 인생에 도움이 된 거 같아요. 당시에는 전국대회나 대학생 연합 등 대외활동에 비해 교내 대회의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교내활동도 대외활동만큼 상당히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죠. 그 사람이 성실하게 무언가를 했다는 증표니까” 당시까지만 해도 아나운서 준비생이 토론대회에 참여한 경우는 없었다. 지금은 배 앵커라는 선례가 생긴지라 많은 준비생들이 선배들의 일화를 듣고 관련 대회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토론 대회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녀는 이런 후배들의 행동에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오기보다 본인이 평소에 잘하고, 주변 지인들이 칭찬했던 것들, 특이한 무언가를 찾아서 경력을 쌓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라며 스스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녀에게 아나운서 활동을 하며 좋았던 점에 대해 물었다. “신입 때 매일 사고치고 혼나는 게 일이었는데 그래도 너무 행복했어요. 아나운서라는 어렸을 적부터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아나운서가 된 이후로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분들이 경계를 풀고 편하게 대해주시는 거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좋지 않았던 점도 있지 않았을까. “수학 공부는 정답이 있잖아요. 하지만 방송이라는 것에는 정답이란 게 존재하지 않아요. 정답이 없는 분야에서 자기의 방향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같은 말이라도 사람마다 각자 다른 해석을 하잖아요. 주변에 있는 많은 분이 각기 다른 조언을 해주시곤 했지만, 결국 내 기준을 반드시 잡아야 했죠. 그렇지 않으면 나다움을 찾을 수도 없고, 나답게 방송을 할 수도 없어요. 언론인이라면 나만의 방송철학을 어떻게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며 ‘나’다운 게 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몸에 밴 배려심과 노력, 그리고 겸손
인터뷰 도중 방송국 직원이 8시 생방송 전에 예행연습할 시간임을 전해왔고 배 앵커는 기자를 데리고 함께 가줬다. 뉴스데스크에 가면서 만나는 사원들 모두가 배 앵커와 반갑게 인사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모든 직원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예행연습 후 앵커실로 가는 길에 한 직원이 짐을 나르고 있는데 문이 닫히고 있었다. 배 앵커는 직원이 짐을 옮길 때까지 문을 열고 기다렸다. 그녀가 어떻게 모든 직원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배 앵커에게 대학 시절 추억을 물었다. “거의 매일을 새벽 수업에 나가고, 점심 때는 언론사 준비 스터디를 하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런 생활을 했어요. 머리가 특출나게 좋지도 않고, 동네에서 눈에 띄는 미인도 아닌, 되게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꿈, 그거 하나는 확실했어요. ‘이렇게까지 하고도 시험에 붙지 않으면 난 재능이 없다’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우리가 달리기를 오래 하면 ‘피 냄새 난다’라고 하잖아요. 그 정도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그래서 저는 제 꿈을 이뤄가는 것 같아요” 그녀는 학창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본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런 그녀도 대학 시절 미팅과 소개팅을 안 해본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자신의 괜한 자존심이 이어진 것을 아쉬워했다.
배 앵커는 뉴스데스크와 인연이 깊다. 그녀는 5시, 주말 뉴스데스크를 거쳐 8시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고 있다. “8시 뉴스데스크에 처음 들어갔던 2011년 5월 4일이 기억나네요. 앵커가 앵커 멘트를 공들여서 쓸 수 있는 건 뉴스데스크밖에 없어요. 그만큼 앵커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영향력이 있는 거죠. 같은 보도를 하더라도 어떤 어감의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뉴스의 농도가 달라져요. 하루종일 부서별로 여러 기사가 들어오기 때문에 여러 번 회의해요. 취재 기자들의 관점을 정확히 파악해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항상 책임감을 느끼고 하는 일입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뉴스 앵커로서 그녀의 소신이 궁금했다. “앵커란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라고 질문을 던지고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정치적인 부분에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요. SNS는 일부러 하지 않고요. 항상 어떤 해석의 여지를 남길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어요” 과거 MBC 파업 때 노조 탈퇴 사건 때문일까. “아직까지도 많은 분이 오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어요. 제가 정치적인 발언을 했고 앵커를 하기 위해 노조를 탈퇴했다는 오해까지 받았죠. 사실 그 당시에 저는 ‘파업에 관련해서는 여기까지만 동조하겠다’는 의견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당시 노조는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저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저는 제가 노조의 기대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요구했어요. 앵커멘트에 대한 제 원칙이 확고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기 방향성을 잡는 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동조나 비난에만 신경 쓰면 갈피를 못 잡을 수 있죠”라며 이 일에 대해서는 대학 때 만났던 친구들, 특히 한양대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전했다.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친구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물었다. 그에 배 앵커는 “나한테 가장 좋은 기회가 와야하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해요. ‘티비에 일 분이 나오든 오 분이 나오든 가리지 마라’, ‘네가 앉을 의자를 다른 사람이 가져오게 하지 마라’ 이런 조언을 해줘요. 무던히 노력해야 하고 돋보이기만을 바라지 말고, 자신의 일을 자신이 직접 찾아야 하죠”라며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배 앵커에게도 10년 후에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물었다. “얼마 전에 10년짜리 여권을 갱신하면서 들은 말이 있어요. ‘이제 43세에 오시면 됩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아직도 대학졸업할 때의 느낌 그대로인데 말이에요. 스무살 때는 ‘빨리 10년이 지나 30살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인이자 언론인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었죠. 지금의 10년 뒤에는 현재의 뉴스데스크 앵커 배현진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손석희 선배님같은 자기 철학이 있는 언론인이 되고 싶네요” 배 앵커는 친구 같은, 모두에게 어렵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이제부터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 나설 수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공부를 많이 해서 자신만의 분야를 가지고 있는 기자를 해보고 싶기도 해요” 어떤 언론인이 될지 끝없이 고민하는 배현진은 이미 진정한 언론인이었다.

 글·사진 이영재 기자 edtack123@hanyang.ac.kr
도움  이재하 수습기자 jhl647@hanyang.ac.kr   윤가은 수습기자 gaae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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