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을 그려내는 크레파스
영화, 세상을 그려내는 크레파스
  • 정진영 기자
  • 승인 2015.11.28
  • 호수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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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통해 잿빛 세상을 화려하게 수놓다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영화 보기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취미생활로 영화 보기를 즐기고 있으며 ‘천만 관객’ 영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영화가 가지는 영향력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과연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문화생활의 중심
시간 때우기, 데이트 코스, 여가생활 등 ‘영화’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영화는 영화관에서’라는 공식이 깨졌고, 그로 인해 영화는 사람들의 삶 속에 더욱 깊숙이 그리고 친숙하게 자리 잡았다.
박종원<한예종 영화과> 교수는 영화가 현재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는 이유를 영화의 특성 두 가지와 연결 지어 설명했다. 첫 번째 이유는 영화가 ‘이야기’ 중심의 미디어라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거울’처럼 정확하게 반영해 구성되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 ‘성취’해주는 방향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영화가 ‘동영상’이라는 매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생생함’은 콘텐츠에서 빠트릴 수 없는 요소다. 동영상은 이런 점에서 글이나 스틸 이미지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이 두 가지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영화는 동영상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생생함’을 흥미로운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하기 때문에 대중들이 영화에 느끼는 매력도와 흥미도가 매우 높은 것이다. 이런 매체적 특성과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려 영화는 대중문화의 소비생활에서 그 중심에 서게 됐다.

공감, 화제 그리고 하나 됨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한 장소에 모아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화제에 집중시킨다. 그런데 특정 화제가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는다면 영화가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영화 ‘도가니’는 2011년에 개봉한 영화로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저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약 47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적은 자본에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500만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냈던 것에는 사람들의 ‘공분’을 자극했던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미성년자가 성폭행을 당하는 등 영화의 특정 요소와 관련 있는 사건들이 발생해 이와 관련된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또한, 가해자는 권력들과 결탁한 ‘사악’들이었으며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 중 최약자인 ‘어린 장애우’들이었다. 이를 본 관객들은 인화학교 사건의 재수사와 시설폐쇄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후 사건 재수사와 관련 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등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또 영화 ‘국제시장’은 지난해 12월에 개봉한 영화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평범한 한 가장의 인생 이야기로 풀어내 1,400만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영화 ‘국제시장’이 1,400만 명이라는 관객을 모아낸 것에는 대중들이 공감하기 쉬운 자신 혹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사실을 기반으로 전개함으로써 세대 간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국제시장’이 개봉했을 당시는 광복 70주년을 앞둔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제시장’이 6.25 전쟁의 흥남 철수, 파독 광부, 월남 파병, 그리고 이산가족 찾기까지 팩트를 기반으로 역사의 큰 흐름을 훑어냈기에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영화는 세대 간 갈등 문제도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영화가 사회를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대다. 지금의 사회는 지나치게 억압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선동적인 기능은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영화는 사회의 단면을 반영해 대중의 오감을 자극함으로써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고 ‘시대의 카타르시스’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대중과 예술의 조화를 통한 발전
잔잔한 사회의 표면에 파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는 영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순기능도 많지만, 대형배급사들의 여론몰이와 같은 역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다. 작품성이 없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만한 영화가 대형배급사의 영화관 독과점 덕분에 재밌고 좋은 영화로 둔갑해 여론몰이를 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선택할 수 있는 영화의 폭도 좁아져 거의 강제로 그 영화를 봐야 한다. 이는 독립영화나 저자본 영화를 죽이고 거대 자본의 영화만 흥행하게 만들어 영화산업의 다양한 발전을 막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기업의 재투자’를 들었다. 그는 “대기업은 관객이 비록 몇 되지 않더라도 그들이 번 돈을 작은 영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등에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영화는 앞으로 더욱 긍정적인 매체로서 기능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전달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영화는 우리 사회를 정확히 꿰뚫어서 보고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다양한 길을 제시해야 한다”라며 “공감을 기반으로 대중들의 감성을 건드려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대중은 작고 다양한 모습의 예술이 모여서 이룬 하나의 물결을 보고 ‘이 모습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옳은 방향인가’에 대해 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영화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중과 예술이 함께 노력할 때 비로소 성숙한 사회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도움 박종원<한예종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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