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만든 금메달, 긍정이 만든 제2의 삶
열정이 만든 금메달, 긍정이 만든 제2의 삶
  • 이영재 기자
  • 승인 2015.11.21
  • 호수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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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계주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포효하는 최민경

 

 

 

 

 

 

 

 

 

한양대학교(이하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을 졸업한 최민경 <대한체육회 청소년국제교류부> 주무(이하 최 주무)는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금메달리스트다. 프랑스 쇼트트랙 국가대표로의 활동을 위해 프랑스 귀화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귀화했고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과정을 거쳐 2011년 대한체육회 청소년국제교류부에 입사했다. 현재는 체육회에 근무하며 건국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코스를 밟고 있으며 2018 평창올림픽 조직위 선수전문위원으로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스포츠 스타이자 스포츠 행정가로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후배들을 위해 강단에 서고 있다.

노력으로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기회

 최 주무는 자신이 스케이트 선수가 될 줄 몰랐다고 한다. 어렸을 때 그녀는 몸이 약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그녀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자 하셨다. 어린 시절 최 주무는 혈색도 안 좋고 몸이 약해서 ‘사람 구실은 하겠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이랬던 그녀가 어떻게 매우 예민하고 힘든 스포츠인 스케이트를 시작해 국가대표가 되고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스케이트를 타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세 남매 사이에서 둘째였던 최 주무는 몸은 제일 약했지만 세 명 중에 제일 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한다. 9살, 그녀는 운명처럼 목동에 스케이트장이 개장했을 때 그곳에 갔고, ‘잘한다, 잘한다’고 항상 칭찬해주시던 선생님들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출전했던 대회에선 매번 1등을 거머쥐었고, 남자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매회 기록 경신을 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중학생 시절 국가대표가 된 그녀는 훈련에 적응하기 힘들어 ‘나는 운동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순발력과 힘이 좋아서 기록을 깨고 국가대표가 됐지만 기술 없이 훈련하다 보니 다른 선수들에게 밀렸어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이미테이션 연습과 코너링 연습을 했지만 저는 체계적으로 알지 못하고 무작정 하다 보니까 슬럼프에 빠지고 운동이 하기 싫었죠”

매 순간 포기하고 싶었다는 그녀는 심지어 ‘밖으로 뛰어내려서 다리가 부러져 운동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과 훈련하다 보면 또 남들에게 지는 게 싫어서 악바리 정신으로 버텼다고 한다. “매일 밤 울고, 참고, 운동장 나가는 것을 반복했어요. 방에서 울다가도 라이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니까 다시 나갔죠.” 그녀에게 슬럼프 극복 방법을 물었다 “주위 친구들과 부모님, 저를 지지해 주시는 코치님들, 대선배들과 상담을 했어요. 그리고 스스로 내린 결론은 잡생각이 날 때마다 운동을 더 하는 거였어요. 그러면 부정적인 생각이 덜 났고, 꾸준히 성장하는 기록을 보면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또한 그녀는 ‘준비한 자가 기회를 잡는다’는 말을 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기까지 그녀는 연습에 연습을 반복 했고 슬럼프마저도 연습으로 극복했다. ‘연습’을 통해 준비하는 자에게 ‘올림픽’이라는 기회가 주어지고 ‘금메달’이라는 복도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 주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이었을까. “2002년 솔트레이크 여자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골인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기대주로 주목받고 출전했었던 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실력 발휘를 잘하지 못해 서러웠어요. 그런 기억 때문에 금메달을 땄던 2002년 그때를 잊지 못해요”

이역만리 타국에서의 새로운 도전

중학생부터 2002년 세계 선수권까지 7년 동안 계속 대한민국 국가대표에 있었던 그녀는 2002년에 한국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그리고 프랑스로 국적을 바꾸어 프랑스 국가대표로서 한국 대표와 경쟁하게 됐다. 그녀에게 귀화하게 된 당시 상황을 물었다. “프랑스 국가대표 친구를 만날 겸 쉬고 싶어서 프랑스에 여행을 갔어요. 거기서 친구가 은퇴를 너무 어린 나이에 하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했고, 프랑스에서 스케이트 선수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어요. 프랑스 빙상연맹에서도 귀화를 적극적으로 환영해서 도전하게 됐죠. 불어도 배우고 싶고 유학에 생각이 있었던 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최 주무는 정상에 올랐던 올림픽에 다시 출전하기 위해 프랑스로 귀화했다. 2002년 당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노스코리아’,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분단국가로서 한국을 알지만 남한은 모르고 북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을 바꾸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최 주무는 프랑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프랑스 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 있었다. 프랑스 국가대표가 된 후 그녀는 또다시 적응해야만 했다. 프랑스와 한국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최 주무는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국가대표여도 운동은 취미로 하고 즐기는 분위기였어요. 프랑스 국가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스케이트를 타고 대회 일주일 전이 돼서야 합숙 연습을 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올림픽에는 예선을 거쳐 8개의 나라밖에 참여하지 못 하는데 어떻게 연습량이 적은 프랑스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에 최 주무는 “훈련을 같이하자고 선수들을 모아서 합숙하고, 한국에서 스케이트 코치를 섭외해서 프랑스 국가대표팀과 같이 훈련을 했어요. 또한 전지훈련으로 한국에 데려가 스파르타식으로 훈련하기도 했죠”라고 답을 했다. 실력이 제일 좋은 키플레이어이자 한국과 프랑스 스케이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는 그녀에게 좋은 일만 있었을까. “한국에서의 훈련방식과 음식 문화가 너무나도 달라서 힘들었어요. 취미생활 하듯 스케이트를 연습하니까 체중이 많이 불었어요.” 또한 프랑스인들의 텃세도 있었다. “제가 프랑스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원래 대표팀 1등이 2등이 되다보니 저에 대한 질투가 많았어요. 외국인이니까 너네 나라가서 운동하지 왜 프랑스에 와서 운동하느냐는 소리도 들었었죠”

최 주무는 2006년 프랑스 국가대표를 은퇴한 후 한국으로 다시 귀화했다. 다시 귀화하게 된 이유를 묻자 “애초에 2006년까지 있으려고 계획했어요. 한국이 그립기도 했고, 다니던 학교도 졸업해야했죠. 프랑스로 귀화할 때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세계선수권 대회까지만 참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어요”

제2의 삶을 위한 배움의 길

 최 주무는 운동선수로서의 인생을 마치고 공부를 하며 제2의 인생을 달리고 있다. 그녀는 스포츠 행정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 주무는 스포츠 행정을 하려면 일반 행정을 기본으로 알아야 된다는 생각에 한양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따고 건국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노력하는 그녀의 포부가 궁금했다. “저는 스케이트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 분야에만 17년을 투자했기 때문이죠.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요. 그렇지만 행정가를 위해 제가 투자한 시간은 아직 4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노력할 겁니다”

최 주무는 왜 스포츠 행정가를 꿈꾸는 것일까. “선수생활을 하면서 계속 의문을 가졌던 점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고 싶어 배움의 길을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실제 필드에서 뛰던 선수로서 선수들의 입장에서 발언해줄 수 있고, 선수들의 편에 서있는 체육인으로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또한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물질적 지원 뿐만 아니라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선수들의 편의를 고려하고 종합적인 지원을 할 수 있게 노력할 거에요” 그녀에게 대학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최 주무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보세요. 고된 운동을 이겨내며 노력했기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뤄낼 수 있었어요. 이를 배경으로 대한체육회에 입사했고 이후 2018 평창유치위원회 홍보대사, 조직위원회 선수 전문위원, 산림청 홍보대사,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힘들어도 견디고, 지금 순간을 알차게 계획하길 바랍니다. 도중에 관두면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많잖아요.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한 사람들이 후회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후회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해요. 살다가 아쉬움 남는 일은 있어도 후회하는 일은 없이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최 주무에게 10년 후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10년 후면 마흔 네 살이네요. 몸 담고 있는 대한체육회에서 더 전문적인 사람이 될 거예요. 스스로를 꾸준히 발전시켜서 선수들에게 은퇴 후 코치나 감독 이외에 최민경이 걷고 있는 행정가라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리며 운동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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