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도시, 우리도 떠야 하나요?
뜨는 도시, 우리도 떠야 하나요?
  • 정진영 기자
  • 승인 2015.11.21
  • 호수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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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받는 대학생 문화… 젠트리피케이션

 

체인점이나 옷가게들로 분주한 홍대거리의 모습이다
공연의 소리로 활발했을 홍대의 한 공연장이 문을 닫았다

 

 

 

 

 

 

 

 

거리공연이 활발한 홍대의 정체성을 가로막는 안내문이 보인다
국가의 지원으로 대학로에 지어진 대규모의 공연장이다

 

 

 

 

 

 

 

 

소극장보다는 체인점이나 옷가게들로 화려한 대학로의 모습이다

공연의 메카, 홍대. 연극의 메카, 대학로. 거리 공연 혹은 연극 활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홍대와 대학로는 꿈의 장소다. 이 두 곳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소위 ‘예술의 천국’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예술의 천국’에서 ‘예술’이 떠나가고 있다. 누가 예술가들을 떠나가게 했을까. 그 원인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정체는?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은 뜨거운 감자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지역으로 꼽히는 홍대가 자리하고 있는 마포구 일대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해소를 위한 컨퍼런스인 ‘2015 마포 로컬리스트 컨퍼런스’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마포구 내 여러 곳에서 개최됐다. 이뿐만 아니다.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이 기획한 ‘제7회 서울시 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은 ‘예술가,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경제학자, 지리학자, 정책입안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시청사에서 오는 27일 오후 2시부터 개최된다.
이토록 활발한 논의가 곳곳에서 이뤄지도록 한 젠트리피케이션은 도대체 무엇인가.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도심 지역이 상업지구나 문화관광지구로 탈바꿈하면서 물가와 임대료가 상승해 원주민과 세입자가 밀려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1990년대 이후 변화한 홍대 주변, 서촌, 가로수길, 대학로를 비롯한 여러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다양한 힘의 연관 작용으로 발생한다. 정석<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에 의하면 그 힘은 크게 △부동산 시장 세력 △주민 세력 △행정 세력의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 세 힘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결과적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어떤 이유로 낙후된 지역에 활기가 생기면 행정 세력이 그에 맞는 지원을 해준다. 이곳에 점차 활기가 더해지면 부동산 시장 세력이 투자를 진행하고 주민 세력(경제력이 있는 주체)은 높아진 지가에 본인들의 터를 내놓게 된다. 이 터는 결국 프랜차이즈나 대기업 브랜드에 넘어가고 가난한 원주민이나 임차인들은 쫓겨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발생한 젠트리피케이션은 겉으로만 봤을 때는 낙후되고 삭막한 지역에 활기가 부여되기 때문에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존에 그 지역을 대표하던 독특한 문화는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문화만 남아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일부가 된 암울한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홍대와 대학로, 위협받는 예술의 장
젠트리피케이션은 대학생들에게 굉장히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홍대와 대학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두 곳의 공통점은 대학가 주변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장소적 특징으로 인해 상권보다는 음악, 미술, 혹은 연극이라는 ‘예술’에 특화된 독특한 지역 문화를 향유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항상 돈이 몰린다. 대학가 근처, 청춘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몰린 홍대와 대학로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더 이상 ‘예술의 천국’으로 남을 수 없게 됐다.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서는 소극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난 2004년 종로구 내 공연장 수 57개 중 100석 미만 소극장 비율은 31.6%였으나 10년 간 164개로 늘어난 공연장 수에 비해 소극장 비율은 18.9%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대학로를 많이 찾게 되면서 문화특수지구로 선정되고 국가적인 지원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소극장의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전체적인 공연장의 수는 늘었지만 소극장 비율은 오히려 감소해 연극인을 꿈꾸는 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 것이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5년 간 연출 일을 했던 이구열<Tiwis Company> 연출은 “건물주와 극단의 견해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연극이나 공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쫓겨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씨는 “대관료가 비싸고 오른 임대료를 내지 못해 문을 닫는 경우도 잦다”라며 “건물주들이 공연 진행을 못 하게 강제로 막는 경우도 있고,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파업하기도 한다”라고 연극인들이 놓인 힘든 현실을 전했다. 이 씨에 따르면 여전히 공연시설은 많이 낙후된 상태고 비싼 대관료를 메우기 위해 오전에는 아동극을, 오후에는 성인극을 하는 극장도 많은 실정이다. 대학로가 뜨면서 지역 자체는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았지만, 정작 원래 대학로에서 연극과 공연을 하던 사람들은 찬밥 신세가 되어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홍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티스트들의 천국인 홍대는 공연할 장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저렴한 임대료와 미술대학 앞이라는 특성상 다양한 문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2000년대 중반부터 이뤄진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문인과 디자이너, 미술가, 인디밴드가 활동했던 공간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부터 5년간 홍대입구역 근처의 임대시세는 20~40% 올랐고, 권리금도 5~10배가량 상승했다. 이렇게 상승한 임대료와 권리금으로 인해 오랜 시간 운영됐던 공연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
홍대의 공연장에서는 인디밴드가 공연하기도 하지만 대학교 동아리들도 공연을 한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기획해 자신들의 실력도 점검해보고,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친구나 지인들, 혹은 동아리 선배들에게 공개한다. 하지만 줄어드는 홍대의 공연장으로 인해 홍대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대학생들도 곤혹을 겪고 있다.
한양대학교 사회대의 밴드 동아리 ‘더부리(더불어 사는 소리)’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정진원<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4> 양은 “외부에서 공연할 때는 주로 신촌이나 홍대의 공연장을 빌려서 하는데, 공연 장소를 오래전부터 알아봤음에도 알아본 6~7군데 중 한 곳도 비어있지 않았다”라며 “결국 마지막으로 전화한 신촌의 한 작은 공연장을 대관할 수 있었다”라면서 공연장 섭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관할 수 있는 공연장이 있더라도 수가 많지 않아 공연하기 좋은 날짜에는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 대관이 어려운 것이다. 또한, 대관비도 만만치 않게 비싸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버는 대학생들에게 7~80만 원을 훌쩍 넘는 비용은 큰 부담이 된다. 이에 정 양은 “편하게 여러 차례 공연하기에는 매우 비싼 가격”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운영되고 있던 공연장들이 문을 닫아 공연장 섭외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도 있었다. 사회대 힙합동아리 ‘MSG’의 회장인 전민기<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4> 군은 “원래 공연을 하던 곳에 예약이 꽉 차서 다른 곳을 찾아봤는데, 문을 닫은 곳이 많아 날짜를 바꿔가며 겨우겨우 예약했던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홍대에 발생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임대료 및 권리금의 상승을 야기했고, 공연장이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결국 대학생들의 음악 활동에도 제한을 줬다.

연대, 바람직한 상생의 길
우리나라에서는 성동구가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조례를 제정해 오는 24일부터 공포·시행한다. 이 조례는 관할구역에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한 뒤 도심재생사업을 펼쳐 지역상권 발전을 유도하며 대형 프랜차이즈 등이 입점해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점업체를 선별할 수 있고 도시경쟁력과 문화 다양성을 보호한다. 행정 차원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사업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해소의 핵심으로 ‘주민들 사이의 연대’와 ‘행정 세력과의 파트너쉽’을 들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마을’, ‘우리 도시’와 같은 주인의식이 부족하다”라며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지속 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꿈꾸며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제시한 성동구의 사례처럼 지역 주민 혹은 소상공인들이 연대하고, 관할 행정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지역 특유의 색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 양과 전 군은 “아티스트들이 형성한 홍대의 고유한 예술 및 공연 문화는 예술인뿐만 아니라 정부의 노력도 더해져 지켜져야 한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또 이 씨는 “예술인들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야 함과 동시에 그러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외부의 도움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예술인뿐만 아니라 대학생 아티스트들까지도 설 곳을 잃게 만드는 젠트리피케이션,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글·사진 정진영 기자 jjy319@hanyang.ac.kr
사진 도움 이혜지 기자 hyeji19@hanyang.ac.kr
도움 이승진 수습기자 wsy2578@hanyang.ac.kr
     이구열<Tiwis Company> 연출
     정석<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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