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음주 후 얼굴 빨개짐과 숙취
[교수칼럼]음주 후 얼굴 빨개짐과 숙취
  • 강보승<의대 의학과 응급의학교실> 교수
  • 승인 2015.05.17
  • 호수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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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처음 구리병원 응급센터에 근무할 때 환영회가 있었다. 평소 술이 센 편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 날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데 알코올이 전신에 꽉 찬 느낌. 감각이 멍한 상태로 도로를 휘청거리면서 걸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졌다. 새벽 3시쯤 됐을까. 토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오면서 잠에서 깼는데 머리도 상당히 아팠다. 참기 힘들어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고 그 새벽부터 아침까지 계속 헛구역질과 설사를 하면서 지키지 못할 금주를 맹세했다. 사실 의료인으로서 창피하게도 이것이 소위 ‘숙취’,  급성 아세트알데히드 독성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무려 13년이 걸렸다. 
 우리가 마신 술, 즉 에탄올은 위와 간에서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변환되고, 아세트알데히드는 다시 알데히드탈수소효소 (Aldehyde dehydrogenase)에 의해 아세트산(초산)으로 변한다. 한국인의 약 60%는 이와 관련해서 정상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평소 꾸준한 음주가 없는 경우, 일 회 음주 시 대략 소주 2-3 잔 정도의 알콜에 의해 변환되는 아세트알데히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기준보다 많은 양을 음주 시 아세트알데히드에 의한 독성증상(숙취)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 보통 알코올 섭취 후 6-8 시간 지난 시점, 즉 혈중 알코올 농도는 0에 가깝게 감소하고 아세트알데히드는 최대가 되는 시점에 잘 발생한다. 물론 이 이상 섭취해도 숙취 증상이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ALDH)의 활성이 매우 약한 40%는 알코올에서 변환된 아세트알데히드 독성증상이 굉장히 심하고 훨씬 오래 간다. 대학 동창생 중 한 명은 맥주 두세 잔만 마셔도 다음 날 심한 전신 피로와 무력감으로 숙취 증상이 나타나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한다. 이렇게 유전적으로 비활성 ALDH 효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술 마시면 금세 얼굴이 빨개지는 ‘아시안 플러쉬(Asian flush)’이다. 이 역시 일종에 급성 아세트알데히드 피부 독성 징후로서 주로 아시아인들에게 많고 동북아의 세 나라, 한국, 중국, 일본에는 전체 인구의 30-40%에 육박한다.
 문제는 아세트알데히드가 WHO가 공인한 독성물질이라는데 있다. 이 물질은 머무르는 부위에서 암을 유발시킬 수 있고 신경과 혈관의 노화에 영향을 준다. 술 마신 후 얼굴 빨개지는 사람들은 설사 음주를 안 하더라도 평소 주변 환경에서 다른 경로를 통해 알데히드 계열 독성물질에 쉽게 노출돼있다. 대표적인 것이 흡연과 자동차 매연이다. 현재 의학계의 각 영역에선 이 효소에 대해 방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데 심근경색, 아토피피부염, 퇴행성 신경계 질환과 관련이 높은 것으로 본다. ‘아시안 플러쉬’가 있는 40%의 사람들은 담배를 무조건 끊어야 하고 음주량도 현저히 줄여야 한다. 나머지 60%의 사람들도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이 권고를 따르는 것이 좋다. 피치 못할 경우는 이 효소를 활성화시키거나 섭취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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