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쉽게 쓰여진 新聞’
[장산곶매]‘쉽게 쓰여진 新聞’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5.05.09
  • 호수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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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이하여 한대신문 구성원과 함께 부암동에 나들이를 갔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곳은 윤동주 문학관이다. 문학관에는 윤동주 시인의 향취를 불러일으키는 물건과 영상물이 있었다. 문학관은 원래 버려진 수도가압장이었는데 이 시설을 윤동주의 시(詩) 세계(世界)를 잘 드러나도록 돕는 문화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치밀한 공간적 구성과 전시가 잘 어우러져 윤동주의 문학관(文學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쉽게 쓰여진 시’를 낭독하고 관련 배경을 설명하는 영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영상이 며칠 동안 내 생각을 지배한 것은 아니다. 곧 바로 이어진 나들이 일정의 추억이 영상을 기억의 저편으로 내몰았다. 다시 시(詩) ‘쉽게 쓰여진 시’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건국대와 중앙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서다. 이 사태는 대학 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이고 남의 대학 일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면 안 되는 것임에도 우리는 한 번도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배들의 한대신문은 그렇지 않았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왜 우리 학교 일만 다룰까? 우리 학교 일이라도 최대한 학교 구성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기사를 쓰려 하고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라도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관련 없는 것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우리 신문은 ‘쉽게 쓰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시를 쓰며 자신의 시가 ‘쉽게 쓰여지고’ 있다고 고백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개교·창간기념호 1면 화보도 이를 차용해 ‘쉽게 쓰여진 신문’이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물론 이 말은 문자그대로 신문을 만드는 것이 쉽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제와 문체를 말하는 것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문을 만드는 모든 신문사 구성원의 노고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비교적 쓰기 쉬운 주제, 즉 무색무취거나 기계적 중립성을 추구하는 주제 혹은 ‘쉽게 쓰기 어려운’ 주제를 쓰더라도 글쓰기에 있어 ‘쉽게 쓰여진’ 문체를 쓴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기반성적인 면을 표현하고 싶었다.
일단 내가 그랬다. 매 호 장산곶매를 쓸 때 나는 누구나 읽기에 부담 없는 글을 쓰기 위해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모두의 친구는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듯, 모두가 읽기 쉬운 신문은 어느 누구에게도 꼭 필요한 신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철저한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이후 수반돼야 할 것은 우리와 직접 관련된 사항뿐만 아니라 사회에 관심을 가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보사가 돼야겠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다. 대학생은 사회의 혜택을 많이 받은 집단인 만큼 오직 사적인 이익 추구(예를 들어 스펙 쌓기나 취직)에만 혈안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대학생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사회는 개개인의 집합체이므로 언젠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끝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때 나치의 지지자였던 마르틴 니묄러라는 목사는 후에 나치 반대 운동에 나섰고 『그들이 왔다』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그들이 왔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중략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그런데 이제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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