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배부르기
눈으로 배부르기
  • 이혜지 기자
  • 승인 2015.05.09
  • 호수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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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창을 통한 대리만족, 푸드포르노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포르노가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작년 한 해 영상 매체에서는 먹는 방송(이하 먹방)이 넘쳐났다. 전국의 맛집을 소개하는 전형적인 먹방인 「식신로드」부터  「아빠! 어디가?」에서 가수 윤민수씨의 아들 윤후군의 먹방처럼 프로그램의 재미를 돋우는 요소로까지 작용하며 먹방의 범위는 확대됐다. 최근에는 요리하는 방송(이하 쿡방)이라 불리는 새로운 방송의 등장
까지 더해져 우리나라의 식탐 열풍은 멈출 기세가 없다. 우리나라의 먹방, 쿡방과 같은 의미로 해외에는 ‘푸드포르노(Food Porn)’라는 용어가 있다.
아직 푸드포르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다음의 사례를 보자.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로 한 A양은 배고플 때마다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을 보고 대리만족하며 배고픔을 참았다. 그러나 한 케이블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곱창을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고 결국 야식을 시켜먹었으나 더부룩함에 소화제를 찾았다.
이런 일이 낯설지 않다면 당신도 푸드포르노에 노출된 적이 있다. 본지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푸드포르노 현황을 살펴보고자 지난 4월 6일부터 9일까지 한양대 학생 115명을 대상으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학생의 64.6%가 푸드포르노가 본인의 식습관에 영향을 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때 학생들이 받은 영향은 푸드포르노로 인해 계획하지 않은 식사를 한 경우와 푸드포르노가 식사 메뉴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경우를 말한다.

보는 것만으로 배부를 수 있다?
푸드포르노란 각종 시각 매체를 통해 음식을 과장하여 보여주거나 타인이 먹는 음식과 관련된 일련의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푸드포르노(Food Porn)는 음식(Food)과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대리만족을 통해 해소하는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의 합성어다. 포르노그래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연출하고 이런 행위가 굉장한 성취감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푸드포르노의 한 분야인 먹방의 출연자는 음식을 먹으며 온갖 표정들로 맛있음을 표현하며 그 음식만 먹으면 다른 음식은 먹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과장한다. 이처럼 먹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인간의 욕망에 집중하는 것이다.
푸드포르노는 제작자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리의 본질은 맛이다. 그러나 푸드포르노는 요리의 맛이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지나치게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 결과 요리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포르노그래피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푸드포르노 또한 먹는 장면에만 초점을 맞춘 방송을 부정적으로 보는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푸드포르노 개념은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가 거의 구분 없이 쓰인다.
사회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반면 요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스스로 준비해서 먹을 수 있기에 자아실현의 느낌을 선사한다. 그러나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극심한 양극화나 1인 가구의 증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현대인들은 요리를 통해 자아실현을 할 만한 여유가 없어졌다”라며 “미디어 속의 음식이 이들의 결핍을 채우는 수단이 됐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항상 식사를 풍요롭고 건강하게 한다면 푸드포르노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암울한 현실에서 기인하는 외로움과 결핍이 푸드포르노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 또한 푸드포르노의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진이나 동영상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푸드포르노
최근 먹방에 이어 요리하는 방송, ‘쿡방’이 등장했다. 이제는 먹방과 쿡방이 푸드포르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먹방은 과거부터 비슷한 유형의 방송이 많이 존재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이에 따라 단순히 먹는 모습만 보여주는 방송에 실증을 느낀 시청자들을 위해 쿡방이 등장했다.
쿡방은 요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방송이다. 쿡방의 대표적인 특징은 '일상'과 '친숙함'이 어우러져 '집밥' 느낌이 나는 요리의 과정을 통해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이런 방송업계의 움직임에 따라 푸드포르노 또한 “맛있게 먹기만 하던 푸드포르노에서 쿠킹포르노로 변화하고 있다”라는 것이 김 평론가의 의견이다. 과거에는 레시피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기존의 레시피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런 움직임과 함께 푸드포르노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푸드포르노는 바쁜 현대인들이 먹고자하는 욕구를 간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극적인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현실과 미디어 환경을 극복해야 건전한 음식문화가가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푸드포르노 엿보기
푸드포르노는 한 장르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시각매체를 통틀어 푸드포르노로 칭한다는 전제하에 본지는 푸드포르노를 △광고 △방송 △사진 △영화 분야로 분류했다.

커피회사의 푸드포르노
프랑스 인스턴트커피 회사 카르트 누아르(Carte Noire)는 자사 커피와 어울리는 디저트의 베이킹 영상으로 유명하다. 시선을 끄는 색감뿐만 아니라 반죽 섞는 소리 등의 효과음까지, 보는 이들의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먹방과 드라마의 결합
tvN의 「식샤를 합시다2」는 국내 최초의 먹방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인기로 인해 방송이 있는 날엔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출연자들의 먹방 영상으로 도배되곤 한다. 제대로 된 푸드포르노를 보고 싶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세계인의 푸드포르노
푸드포르노 이미지를 간편하게 찾고 싶다면 대표적인 사진 공유 서비스 '인스타그램'에서 #foodporn를 검색하면 된다. 전 세계에서 약 5천만 건의 먹음직스러운 음식 이미지가 공유되고 있다. 
극장에서 만나는 푸드포르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심야식당」은 늦은 밤 손님들이 원하는 요리를 해주는 식당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는 오는 6월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도움: 김헌식 문화평론가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tvN 「식샤를 합시다2」
공식 홈페이지,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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