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대학은 어디에 있는가
[교수칼럼]대학은 어디에 있는가
  • 이현청<교육대학원>석좌교수
  • 승인 2015.04.25
  • 호수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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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위기라고 말한다. 고독과 낭만과 자유가 사라진 지 오래이고 마음 아픈 교수들과 더 아픈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와 취업에 내몰리고 국가 주도 평가지표를 맞추기 위해 급급하고 있다. 일찍이 대학은 상아탑으로 불리면서 세상의 때묻음과 현세 중심의 근시안적 학풍과 거리를 두어왔다. 그래서 고매한 학문이 가능했고 인류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큰 마음을 키우는 창조적 사고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은 상아탑이기를 고집해서도 안되고 역할과 기능 또한 바뀌었다. 대학은 이제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고 시대적 선을 추구하는 산실이며 세상의 고뇌를 해결하는 응용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대학은 시대 상황이 어떻든 시대의 요구를 해결해야 하는 사명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학은 어디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대학의 3대 기능은 연구, 교육, 봉사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 모두가 지금은 대학의 고유기능이 되지 못한다. 대학은 이제 지식정보화와 세계화의 틀 속에서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지식을 가공하고, 응용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소위 3K(knowledge media, knowledge net, knowledge incubator) 기능으로 변화된 것이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교수는 교수대로, 총장은 총장대로 ‘아픈 상아탑’(worrisome ivory tower)의 현실 속에서 분투하고 있다. 진정 대학은 어디에 있는가? 낭만을 추구하고 학문의 자유와 인간 고뇌와 사유에서 비롯된 고독과 원대한 미래를 설계하는 우리 젊은이는 어디에 있는가? ‘정의’를 강의하고 ‘행복학’을 강의하는 하버드의 여유, 동경대가 동쪽으로 가면 서쪽으로 간다는 교토대의 도전, 노벨상 92명을 배출한 시카고대의 학문적 프라이드, 창조를 위한 21세기형 인문사회과학을 재탄생시키고 있는 소르본대의 여유는 우리에게 없는 것인가?
  한양의 젊은이들이여, 이제 젊다는 이유 하나로 젊다 하지 말라. 대학은 젊음을 재탄생시키는 곳이다. 무엇보다 사고를 젊은 사고로 재탄생시키는 곳이다. 처칠 수상이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간절히 외친 것과 같이 어떤 어려움이 그대들을 좌절시킨다 해도, 어떤 도전이 그대들을 막는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말라.”라고 권면하고 싶다.
  대학은 스펙 쌓는 곳만은 아니다. 취업 준비의 장만도 아니다. 대학은 젊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도전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곳이고 100년의 삶의 여행을 위한 준비기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은 자기와 만나고 학문과 만나고 스승과 만나며 또 다른 자기를 발견하는 곳이다. 대학이 흔들리는 것은 젊은이들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지식과 창조적 사고와 융합적 학문을 녹여내는 학문의 용광로가 대학이다. 진정 우리 대학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이 대학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여기에서 해답을 찾아야 될 것이다. 아마 20년 뒤에는 많은 대학이 사라지는 대학의 빅뱅이 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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