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 정진영 기자
  • 승인 2015.04.04
  • 호수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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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을 동경했어요"

현재 개인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탈북자 최연희 씨는 평양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지 5년이 됐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북한 군부에서 일인자였지만 김정일에게 여자 문제에 관한 충언을 했다가 탄광으로 쫓겨나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그때 그녀의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언이 ‘북한을 떠라’였던지라 그녀의 아버지는 그 즉시 한국으로 넘어올 계획을 세웠다. 결국, 그녀와 그녀의 가족 모두는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넘어왔고 현재 서울과 수원에 정착해 살고 있다. 최연희 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탈북 후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탈북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어떤 것이 있었나?
A. 엄마, 아빠와 동생들은 서울에서 살고, 회사 때문에 나만 수원에서 살고 있다. 초기에는 탈북자들에게 임대주택과 초기정착 비용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못 받았다. 조건이 제한돼 있다고 하더라. 부모님이 뭘 모르시니까 나오자마자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셨다. 그런데 그게 재산으로 책정되다 보니 초기정착 비용을 못 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브로커 비용으로 빚지고 들어오진 않았으니까 다행이다. 지금은 김정은이 브로커들을 다 없애라고 단속해서 한 명당 무조건 1500~2000만 원, 중요한 사람 같으면 5000만 원까지 받는데, 가족들이 한 번에 넘어오면 할인도 해준다고 하더라.

Q. 북한 대학이랑 한국 대학의 차이점은 뭐가 있었나?
A. 일단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자기 주관이 확실하다. 또 언어와 사상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하루는 친구랑 지하철을 탔는데 신문에 대통령 초상화가 나와 있었다. 북한에서는 초상화를 함부로 찢지도 못하고 엉덩이로 깔고 앉아도 안 되는데 여기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깔고 앉는 것이다. 나는 신고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길래 ‘얘네들은 머리가 썩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 모습에서 엄청 충격을 받았었다.

Q. 한국에서의 적응이 힘들진 않았나?
A. 지금도 적응이 다 됐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언어도 다르고 생활문화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개그콘서트를 보고 굉장히 많이 웃지만 우리는 아직도 못 웃는다. 웃기지가 않다. 그래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웃으면 적응한 사람이라고 한다.

Q. 한국에서 살면서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은?
A. 아무래도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 좋다. 북한에서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한밤중에 자다가 사라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수용소에 갔을 거라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또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유포해도 사형당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학교 학생도 사형을 당했다. 북한은 그걸 보여줘야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끼고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단속반을 하나 조직해 학생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불순한 사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심문한다. 그래서 항상 마음 한편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점이 없어 좋다.
한편, 말이 안 통해서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좀 있다. 화장품의 경우 우리는 스킨을 살결물, 립스틱은 입술연지 이렇게 불러서 어디 가서 물어보기조차 어렵다. 또한 한국에서는 언어가 조금만 달라도 이상하게 보거나 어디서 왔냐고 묻곤 한다. 그래서 보통은 중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북한에서 왔다고 말한다.

Q. 한국에 오면서 기대했던 것이 있나?
A. 한국에 가면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요즘은 바빠서 TV를 못 본다. 또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북한 여자니까 한국에 가면 예쁜 편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한국 여자들이 더 예뻤다. 남남북녀는 정말 옛날 말이고, 지금은 한국의 남자나 여자가 우리보다 더 예쁘다.

Q.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한국 대학생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본인이 여기서 태어난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르는 것 같다. 자신만 혼자 힘든 것 같고, 한국은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고, 자신만 못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탈북자인 우리는 왕따를 당해도 좋으니 한 번쯤은 평범한 곳에서 태어나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평범한 삶을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건다는 걸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또 윗세대들의 고생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엄마, 아빠 세대가 고생했던 걸 누리려고만 생각하지 말고 지키려고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북한은 자유가 전혀 없지만 여기는 자유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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