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로]봄이 오면
[진사로]봄이 오면
  • 전영식
  • 승인 2015.03.21
  • 호수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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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이 피어나고 있음에 내 안의 감각들이 일제히 반응합니다. 계절사이로 어깨를 겯고 오는 시간의 흐름을 봅니다. 눈썹만큼 곧추 선 햇살, 햇빛, 햇볕에 가끔은 자그마한 기대감과 이유 없는 행복감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지금쯤 우리학교 진사로에는 진달래 꽃망울이 부풀어 올라있고, 인문대 높은 언덕의 개나리꽃 맹아도 많이 뾰족해졌겠지요. 그러고 보니 지난 대학시절이 꽤나 그리워집니다. 하이든의 종달새 현악선율에 낯설게 불어오는 삼월 특유의 바람이 손에 잡힐 것만 같습니다. 이쯤 되면, 최소한 저는 과거의 회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온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2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제 일입니다. 저는 프로그램에 현재성보다는 과거성을 주로 엮어내는 편입니다. 큐시트 곳곳에 기억의 퇴적물을 캐거나 과거를 향수할 수 있는 장치들을 설치합니다. 물론, 문학이나 문화물생산의 기술로도 잘 알려진 ‘낯설게하기’ 기법중 하나겠지요. 제작하는 과정에서, 저는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위로와 만족을 느끼곤 합니다. 당연히 시청효과도 유사하게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된 연출동인이겠지만 말입니다.
과거의 서사로 큰 인기를 얻은 문화물들이 꽤 있습니다. 필두에 선 <국제시장>을 비롯해서,<응답하라 1997>,<써니>,<세시봉> 등등. 이런 것을 주창윤 교수는 <허기사회>에서 과거의 어떤 시절로 돌아가려는 심리적 퇴행이나 자기위로에 빠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또 그 이유를 나아갈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고 짚어냅니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아가도 살아가기 힘든 무기력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국제시장>의 덕수를 보고 공감하고, 비록 내가 그 세대에 속하지는 않아도 위로를 받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허기사회’라고 읽고 있습니다.
#3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망망대해, 신자유주의라는 험난한 조류 속에서 흘러갑니다. 물질을 바탕삼은 이익과 경쟁의 정치한 논리 속에서 살아갑니다. 계측화, 서열화, 단위화가 유의미한 가치의 척도가 되는 시대입니다. 모티베이션, 프로젝트, 최적화, 자발성도 신자유주의 체제의 통치술요소라고 한병철 교수는 해독합니다. 지식적인 소화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공감합니다. 표피나 단면 또는 부분적 가치가 전체인양 강조되는 사회이고, 시대입니다.
#4
성적과 취업, 성취와 미래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그래도 봄입니다. 발돋움하는  봄이 겨울과 여름 때문에 존재하듯이, 자본이나 물질적인 것들 이외에도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삼월의 햇살, 햇빛, 햇볕이 주는 계절의 흐름을 보며 잠시 쉬어갑니다.
전영식<TJB대전방송 책임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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