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인간의 욕망과 미디어 기술
[장산곶매]인간의 욕망과 미디어 기술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5.02.27
  • 호수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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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TV를 넘어 UHD TV(Ultra High Definition Television) 시대가 온다고 한다. TV를 비롯한 영상 매체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굳이 집에서까지 영화관처럼 볼 수 있는 미디어 장치가 있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실 미디어 단말기나 녹음·녹화 용도의 기계가 고화질·고해상도를 지향하는 현상은 TV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화관에서는 아이맥스나 4D가,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미러리스나 DSLR 등 거의 모든 멀티미디어 기기에서 발견된다.
이런 현상이 다양한 멀티미디어에서 나타난다는 점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왜 인간은 기계를 이용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현실 세계를 재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혹시 그 이유가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시간에 종속돼 있다는 점이 있겠다. 완전한 신이라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 위에 우연히 떨어진 나뭇잎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망망대해로 떠밀려가듯,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시간이라는 도도한 물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미래로 흘러간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라는 바다로 향해간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지각한 인간은 이런 슬픈 현실에서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인생이 무미건조하고 차라리 없어도 괜찮은 사람에게는 시간에 떠밀려 간다는 사실에 울분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행복한 사람에게는 행복한 순간으로부터 흘러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엄청난 상실감과 허무감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욕망할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영원’이라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영원은 완전함과 관련된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 간극을 인간은 메우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시간을 멈추어 행복한 시간을 영원히 지속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인간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상황과 사람을 영원히 담을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시청각 매체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해줄 수 있는 단서다. 끊임없이 복원하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과거를 언제나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시청각 매체는 발명됐고 기술적인 진보가 이뤄졌다. 물론 이것이 완벽한 과거의 재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변환 장치를 통해 가상의 화면으로 저장해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게 됐으므로 간접적으로나마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이제 인간은 행복한 순간을 ‘거의’ 영원히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생기면 사진기나 캠코더를 동원해 어떻게 해서든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때 당연히 화질이 좋으면 사랑스러운 이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구현해 낼 수 있기에 영상기술은 무한히 좋아져야 한다. 화질뿐만 아니라 음질도 마찬가지다. 당시에 사랑했던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왜곡 없이 저장된 다음 언제든 이를 불러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디어 기술이 계속해서 고화질·고음질을 지향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불완전한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처절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UHD TV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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