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썬 유혈사태를 바라보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썬 유혈사태를 바라보며
  • 한대신문
  • 승인 2006.05.07
  • 호수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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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망령이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민주화 이후 더 이상은 없을 것이라 여겼던 진한 선홍빛 유혈진압, 그리고 이에 대한 여론의 말없는 수긍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 대추리의 유혈 충돌이 지난 4일 있은 후 여론이 연일 시끄럽다. 국방부의 행정대집행을 막으려던 평택 주민·시민단체 회원 1백여 명과 경찰 2십여 명의 부상자가 생기는 등, 보도 영상을 통해 처참한 현장의 모습이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다.

지난 1990년 주한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한 한·미간 합의에 따라 기지 이전을 강행해야겠다는 국방부와 자기가 살아온 터전을 떠날 수 없다는 주민들의 충돌은 더할 나위 없이 참혹하다. 방패로 내려찍혀 피를 흘리며 파이프를 든 시위대와 이에 맞서 촘촘히 도열해있는 경찰들의 모습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하는가.

현지 주민들은 미군기지 이전은 인정하나 부지 평수를 줄이고 희망자에 한해 기존의 터전에서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한명숙 신임 총리가 대화와 협상을 토대로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나 불과 하루 만에 행정대집행의 불가피함을 내세우며 유혈진압을 불사한 국방부의 이번 처리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악의적인 시선이다. 몇몇 수구성향의 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추리 갈등은 이념단체의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주둔의 불합리함을 줄곧 주장해오던 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따라 평택 미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뜻에 따라 현실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연스러운 일임을 간과할 수 없다. 오히려 이들 단체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이번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학내 자유게시판에서 사태의 옳고 그름 보다 누가 참여했고, 안했고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거주 이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거주지에서 쫓겨날 수는 없다. 만약 사회적 요구가 있어 불가피하게 개인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개인의 불이익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3일 국방부의 사전 홍보과정에서 윤광웅 장관은 “백만장자가 생존권 위협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충분한 제시받은 주민들이 더 많은 이익을 노리기 위한 ‘꾼’으로 매도한 사실은 비판받아야 한다.

현 사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과연 무엇일까. 더 이상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피 흘리는 현실을 바라볼 수 없다. 말만 ‘대국민 합의’가 아닌 진정한 합의를 위해 보다 깨어있는 자세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먼저 중립적·객관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매혹적인 달콤함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을 지닌 자와 권력이 없는 자 사이에서 중립이란 과연 무엇인지 대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 시각에 매몰되지 않는 객관적 시각으로 현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구호도 의미가 없음은 자명하다.

권력이 없는 자의 시각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 오직 강요받는 자의 시각에서만 억압을, 그리고 폭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저항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살펴보는 자세가 이번 평택 대추리 유혈진압 사태를 풀 수 있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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