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비움의 결과
혁신은 비움의 결과
  • 한대신문
  • 승인 2014.11.10
  • 호수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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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옛날. 대학생들은 개인의 생존보다는 타인과의 공존을 고민했고, 돈 한 푼 없이도 호기롭게 술을 마시고 (물론 학생증이나 시계를 맡겨야 했지만) 잠자리에 대한 대비나 걱정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다. 여기저기 한눈을 팔다가 학점은 바닥을 깔았지만, 당장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어도 타인의 삶, 우리 사회의 삶의 조건과 부조리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엿보기 위해 책을 읽었으며, 스스로 구한 해답에 인생을 걸기도 했다. 엉뚱하거나 기괴한 행동은 대학생들의 특권과 같은 것이었고, 그들이 벌이는 갖가지 기행(?)을 세상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때의 대학은 분명 세상과 구별된 공간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과거의 혈기 왕성했던 청춘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재테크에 몰두하는 머리가 희끗한 중년층이 되었다. 불안한 직장과 오르는 물가, 자녀들 교육비, 노후대비와 같은 갖가지 문제들이 숨통을 조여오지만, 꿈으로 가득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현실의 암울함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때론 견디기 힘들지만 과거를 회상하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시절을 살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축복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가수 신해철에 대해 이어지는 애도의 물결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그의 삶 자체가 과거의 대학문화와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을이 익어가는 현재의 캠퍼스에서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학생들은 과제와 시험, 그밖에 스펙에 도움이 될 많은 일을 해나가느라 바쁘고, 교수들은 강의, 연구, 논문 작성, 대학 순위를 올리기 위한 갖가지 사업에 동원되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다. 지금의 대학은 생존과 눈앞의 미래를 걱정하는 다수의 개인이 모인 정체불명의 덩어리나 다름이 없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커녕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성찰할 여유도 없는 곳에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할까? 생각은 소화기관과 같아서 비우지 않고는 새로 담을 수 없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적어도 대학만큼은 갖가지 이해관계에서 한걸음 벗어나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여유와 성찰로 무장해야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의 대학생들이 먼 훗날 떠올릴 스스로 대학시절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그들도 지금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을까. 바빠 죽겠는데 혁신도 하고, 융합도 하고, 심지어 창업도 하라고 다그치는 대학. 덧셈보다는 뺄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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