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인생을 건축하다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인생을 건축하다
  • 이윤수 기자
  • 승인 2014.10.25
  • 호수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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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하우스」 건축가 양진석 교수

90년대 생이라면 어렸을 적 「러브 하우스」라는 예능프로그램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러브하우스는 매주 연예인과 건축가가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집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건축가가 출연하여 큰 인기를 누렸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건축가 중 한 명이 과거 우리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하셨던 양진석 교수님이다. 그는 이미 건축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5집까지 음반을 낸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연극「리턴 투 햄릿」에서 배우로도 활약했던 이력이 있다. 건축, 음악, 연기 전혀 다른 성향의 일들이지만 양 교수는 철저한 자기분석과 관리를 통해 이 모든 분야에서 본인의 영역을 확보했다. 어떤 분야가 됐건 간에 ‘Well-Made’ 하게 살아야 한다는 양진석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한다.

아 러브하우스 건축가~

처음 만난 교수님의 모습은 어렸을 적 러브하우스의 자상한 건축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가 대학생으로 변한 시간만큼 교수님에게도 세월은 흐른 듯 흰머리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한대신문(이하 한): 교수님 안녕하세요, 옛날에 TV로만 보던 교수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양진석 교수님(이하 양): 하하하 반갑습니다. 요즘은 일이 많아서 정신없지만, 건축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종로에서 ‘그랑서울’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분들, 다른 건축가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등장하는 음식종합 상가를 만드는 일이에요. 건축 활동 외에도 시간을 내서 관공서나 학생들을 찾아 강연 활동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건축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과거 교수님이 진행했던 「러브 하우스」에서의 활약이 기억났다. 매주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는 익숙한 내레이션 뒤에는 항상 마법을 부린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런 화면의 뒤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교수님께 직접 당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한: 교수님이 보면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이 「러브하우스」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양: 사실 러브 하우스 이전에도 잠깐 방송활동을 했었어요.「신동엽의 신장개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렵게 상점을 하는 분들을 도와주는 갱생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그때 인연을 맺은 PD님이 이번엔 상점이 아니라 집을 해보자는 제안에「러브 하우스」의 건축가로 출연하게 된 거죠.

한: 프로그램에서 매주 새로운 건축을 하신 걸로 기억하는데요,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양: 많이 힘들었습니다. 예능방송의 특성상 긴 시간 사전녹화가 안 됐어요. 방송 직전까지 완벽한 집을 보여드리기 위해 밤샘작업은 기본이었어요. 제보자들의 집이 지리적으로 열악한 지역에 위치한 곳이 많아서 작업 진행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건축이 끝난 뒤에는 베푸는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그 짜릿함 때문에 거부감보다는 즐거움을 찾아 작업했던 기억이 드네요.

대리석이 아닌 돌담이 되세요.

대학에 입학을 하고, 진로 때문에 고민을 해본 경험이 한번쯤은 모두 있을 것이다. 교수님의 진로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한: 교수님은 학창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요?

양: 기본적으로 모범생이었던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엄친아’와 비슷했어요. 공부도 좀 했던 것 같고, 학급대표, 운동, 음악까지 나름대로 학창시절부터 제한을 두지 않고 여러 가지 활동을 즐겼던 것 같아요.

교수님이 당당하게 본인을 엄친아라고 말해서 순간 당황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런 교수님도 항상 건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양: 대학을 건축학과로 입학 한 후에 수업이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힘들었어요. 건축을 좋아하긴 했지만 저는 인문과학적인 성향이 강했어요. 하지만 건축은 공학계열이다 보니까 딜레마가 왔던 것 같아요. 유학길에 올랐던 당시 ‘건축이 내 길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 적도 있었어요.

한: 교수님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셨나요?

양: 나만의 힐링타임을 갖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관심분야가 무엇인지 정체성을 파악하려 했어요. 그렇게 2주 동안 미국의 6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제 정체성을 찾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그곳에서 든 생각은 ‘지구에 땅이 이렇게나 넓은데 이 땅에 내가 직접 디자인한 건축을 세우는 직업이 괜찮을 수도 있겠다’였어요. 좌절의 순간을 저만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다시 건축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당시 교수님처럼 현재 진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양: 앞서 말했듯이 본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본인에 대한 파악 없이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스펙을 쌓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본인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활동이 진짜 스펙이라는 걸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건축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돌담을 쌓는 것과 대리석을 붙이는 것은 다른 문제에요. 대리석은 빼도 규격에 맞는 대리석을 찾아 붙여 대체할 수 있지만, 돌담의 돌을 빼면 돌담은 무너져버리죠. 내가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될 것인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보는 일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Well-Made, 무엇이든 잘해야죠

교수님은 건축 일을 하면서 꾸준히 곡을 작곡하고 음악 앨범을 내고 있다. 현재 5집 앨범까지 낸 싱어송라이터다. 뿐만 아니라 장진 감독의 연극「리턴 투 햄릿」에 연극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 음악과 연극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양: 음악은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했어요. 제 생각과 느낌을 선율 안에 표현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가수라는 직업도 가지게 됐죠. 단순히 취미활동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곡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기 위해 노력하는 가수입니다. 특히 5집 ‘장소 찾기 프로젝트’는 그런 저의 생각을 잘 담아낸 앨범이라고 볼 수 있죠.

연극 활동은 2012년도에 잠깐 했었어요. 연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예전부터 있었죠. 연기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몰입하지 않으면 모든 흐름이 깨져요. 낮에는 건축 일을 하고 밤에는 배우로 변신하기 위해 정말 집중해서 몰입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특별한 체험이었어요.

한: 건축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가능한 건가요?

양: 제가 한 모든 일은 ‘Well-made’ 합니다.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닌 거죠. 저도 도전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이 있었지만 철저한 계획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내 계획안에서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무모한 시도가 아닌 계산된 도전을 할 수 있었죠.

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이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양: 참 좋은 질문이네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청춘이니까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고 싶어요. 배낭여행도 가보고 싶고,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고, 연애도 많이 해보고 싶네요. 청춘이니까요!

사진 김은영 기자 young541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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