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일탈’, 그런데 말입니다
즐거운 ‘일탈’, 그런데 말입니다
  • 금혜지 편집국장
  • 승인 2014.09.20
  • 호수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만에 학생회관 건물이 시끌벅적하다. 기자들이 신문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바깥은 축제 주점 준비로 분주하다. 캠퍼스 곳곳에도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4월 16일 이후에도 시간은 흘렀고 노란 리본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섯 달이 지났고 우리는 그 때 미뤘던 축제를 시작하려 한다. 들뜬 분위기를 비난하는 것도, 축제를 즐기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도 아니다. 의도치 않게 가을에 열리게 된 축제이니만큼 그 무게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여태까지의 축제 문화가 이번에도 지속된다면 애초에 축제를 연기했던 의도가 크게 퇴색될 것이다. 스스로도 정숙한 음주 생활을 해 온 대학생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번 축제만큼은 학생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혹자는 대한민국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도 한다. 우리 사회에 하나의 분기점이 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충격적인 슬픔을 깊이 애도하는 동시에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 한다. 축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단순히 축제를 유보하게 된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축제 문화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

‘일탈’이라는 이번 대동제의 이름에서도 상징적으로 알 수 있듯, 축제는 학생들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평소의 대학생, 소위 말하는 ‘지성인’이라면 눈살을 찌푸릴법한 일들이 축제 기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작년에만 해도 우리 학교 노천극장 무대에서 이벤트성으로 실시한 커플게임이 구설수에 올랐고, 선정적인 문구를 내건 주점에서 선정적인 의상을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심지어 모 학교 축제에서는 학생의 성적인 매력을 어필해 그를 경매에 부치는 이른바 ‘노예팅’이 성행하기도 했다. 미흡한 뒷정리로 인해 캠퍼스가 난장판이 되는 일도 많았다.

이런 주점 문화는 상당한 시간 동안 대학 축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단숨에 바뀌기 힘들 것이다. 사실 축제 첫날이었던 지난 19일의 상황만 봐서는 학생들의 자정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흡연 구역이 아닌 구역에 눈이 내린 것처럼 담배 꽁초가 쌓여 있었고, 건물 내부에 토사물도 가득했다. 청소 노동자분들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쓰레기더미들을 몇 시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정리했다.

바뀐 통합보안 시스템이 축제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우려도 쉽게 떨칠 수 없다. 학교에서는 효율성을 강조해 보안 시스템을 바꿨지만, 경비 인원 축소로 인한 문제점이 예상되고 있다. 이전에도 축제 기간에는 유난히 안전사고들이 많이 발생해 왔다. 축제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음 노출되는 통합 보안 시스템이 철저히 제 역할을 할지도 지켜봐야할 것이다.

이렇게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학생회 차원의 자정 노력은 반가운 소식이다. 대의원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주점 운영안을 마련한 점은 긍정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대 로비에 설치된 절주 선언대, 음주 학점 측정 등의 이벤트는 학생 스스로의 노력을 촉구하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대학생을 대학생답게 하는 것은 슬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누리더라도, 처음 축제가 미뤄졌던 이유에서는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애한제가 건강한 대학 축제 문화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