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말을 해야 알지. 말을
저기요, 말을 해야 알지. 말을
  • 이형두<경영대 경영학부 07> 군
  • 승인 2014.05.18
  • 호수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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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1면 전면을 가득 채운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며, 한대 신문의 기조 중 하나인 ‘흘러가는 한양의 역사 기록’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구나 하는 의도를 어렴풋하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시도도 좋았고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그런 속내를 이해한 독자는 몇이나 될까.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면 수많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의문은 축사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한양학원 설립 75주년을 축하하는 축사인지, 한대신문 창간 55주년을 축하하는 축사인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축사들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75년 전 5월 15일에 어떤 일이 있었고, 55년 전 5월 11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귀띔조차 주지 않았던 불친절함에 서운함을 느낀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당연히 알아야지’ 라는 의도라면, 나는 내 생일도 잘 잊어버린다고 말을 해주고 싶다.

문화면의 주거형태에 관한 이야기는 뚝섬에 거주하는 민달팽이 자취생의 일원으로서, 굉장히 공감이 가고 흥미로운 기사였다. 다소 생소한 개념인 쉐어하우스 이야기와, 그에서 이어지는 해방촌에 관한 기사는 따로 스크랩해 뒀을 정도로 좋은 정보를 가득 담고 있었다. 다만 굳이 구성을 집 모양의 빈칸이 보이도록 했어야만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집에 관한 기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 가독성을 떨어뜨렸다.

축사를 받는 과정에서 어떤 수많은 변수가 있었을지, 편집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을지, F(X) 한대신문 편을 읽으면 그 고충과 애환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정보 공급자와 소비자가 아니라 같은 한양대학교 학생의 입장에서, 고생하는 기자에게 연민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발로 뛰어야 하는 대학언론의 자리가 아늑하고 편안해서야 좋은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패가 쌓여서 발전과 진보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쓴소리를 좀 담긴 했지만, 우리 한대신문이 다음 호엔 또 어떤 시도를 할까 기대하고 있다는 속마음을 비추며, 필자 역시 한대 신문의 55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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