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포도는 무슨 맛인가요?
당신의 포도는 무슨 맛인가요?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4.05.12
  • 호수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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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이창재 씨

이창재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사람이다. 대표 작품으로 영화 ‘사이에서’, ‘길 위에서’가 있다. 그는 예전부터 다양한 분야에 발을 들였다. 대학 시절 사법고시부터 시작해 문학, 언론, 광고회사 등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이 한데 모여 있다. 잘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갈증을 느끼고 새로운 오아시스를 향해 떠났던 그에게 종착지는 ‘영화’였다. 단지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걸까. 어떻게 보면 그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항상 자신을 가장 위에 두고 비빌 언덕을 찾았다. 올라가고 싶은 언덕을 찾아 인생을 여행한 셈이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은 자신에 대한 도전과 탐구의 결과다.


“세상엔 알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아”
한대신문(이하 한): 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이창재 감독(이하 이): 어쩌다보니 가족들의 바람으로 한양대 법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그냥 법학을 하기엔 억울하더라고요. 당시 제게 법학은 개성이 없는 학문이란 이미지도 있었어요. 법학을 제 진로로 정한다면 평생을 살아가는데 그다지 즐겁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법학이 제게 남긴 것은 논리와 암기 두 가지였죠.

한: 그렇다면 학과 공부 외에 무엇을 했나요?
이: 학년 말에는 내가 잘하는 걸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문예상에 도전하기도 하고 문학비평이나 시나리오도 써봤어요. 만약 이 길이 맞는다면 뭔가 하나는 증명이 될 거란 생각으로 도전했어요. 총 6개의 문예상에 지원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됐어요. 당시에는 그 길을 걷는 것에 대해 큰 믿음을 심어주었죠.

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이: 제가 교내 언론고시반을 처음 만들었던 거요. 당시에는 공무원 시험을 위한 고시반은 있어도 언론고시반은 없었어요. 잠시 언론사 쪽으로 취직을 준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학교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행동력 있는 교수님을 만나 학교에 유치할 수 있었죠. 당시 기획안도 만들어가고, 교육 체계도 직접 만들었어요.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 졸업 이후 여러 직장을 거쳐 제일기획이라는 곳에 가게 됐어요. 회사에서 만드는 광고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됐어요. 생각 외로 제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었죠. 그때 이후로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늦깎이 영화지망생”
한: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무엇을 했나요?
이: 당시 저는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외국에서 학교에 다니며 영화에 대해 공부할 생각이었죠. 결국, 35살에 유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외국에서 학교에 다니겠다고 말했을 때 주위 사람 중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저를 말렸어요. ‘35살이 지금 꿈을 찾을 나이냐’, ‘지금 너 하고 있는 거나 잘해’ 혹은 ‘이제 와서 다른 걸 공부하러 다시 가는 게 말이나 되느냐’라는 등의 많은 질타를 받았어요.

한: 사법고시, 언론사, 광고회사 …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를 맛보았는데 계속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그동안 기자나 광고회사 일했던 것은 작은 언덕에 올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이 분야에 있으면 앞으로 내가 계속 이 언덕에 남아 있어야 할지 고민했어요. 아니면 빨리 언덕을 내려와서 다른 언덕을 찾아야 할 것 같았죠. 

일단 저는 해볼 만한 산이어야 올라갈 욕심이 나요. 조그마한 언덕에 올라온 것만으로 과연 내가 행복하게 여기서 만족하면서 목동처럼 살아갈지 아니면 새로운 산을 정복하는 희열을 느끼며 살아갈지 고심했어요. 영화나 영상매체는 계속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산이었죠. 설령 내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후회 없이 내려올 자신이 있었어요.

한: 우리나라에서도 공부할 수도 있는데 영화를 만들겠다고 외국에서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러웠어요. 35살이 됐는데 대학에 가서 영화를 배우는 모습이 머릿속에 예쁘게 그려지진 않았어요. 내심 아예 외국에서 공부한 다음 짜잔~ 하고 나타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한: 늦은 나이에 외국으로 나가 공부하는 일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뒤늦게 현실을 깨달았죠. 한번은 졸업을 앞두고 파티를 했는데, 돈이 없어서 가장 싼 술이었던 밀러라이트를 들고 갔어요. 택시비도 없어서 파티 장소까지 40분 거리를 걸어가야 했는데 길을 걷는 그 모습이 꼭 제 미래 같더라고요. 결국, 파티도 안가고 홀로 술을 마시는데, 문득 생전 연락도 없었던 형에게 전화가 왔어요. 전화가 와서 ‘잘 지내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 괜찮아하고 말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벌컥 나더라고요. 위안이 돼서 그랬는지 내 자신이 초라해서 그랬는지. 그때 형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남아요. 새벽이 오기 전 밤이 제일 깜깜하다고.

“영화는 스스로의 통찰방식”
한: 그 시기에 힘들었겠어요. 나아졌다고 생각할 때는 없었나요?
이: 근데 그 새벽이 생각보다 빨리 왔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운좋게 중앙대학교 첨단영상 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었어요. 아는 사람도, 전혀 연관도 없었던 이력인데 합격했다는 것이 놀라웠죠. 덕분에 교수직에 있으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어요.

한: 영화를 찍으며 기뻤던 적은 언제인가요?
이: 촬영에서 카메라는 일반적으로 벽의 의미에요. 카메라는 순간을 영원으로,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죠. 감독과 면담자의 소통에 있어 장애가 되죠. 이 장애가 깊어지면 어느 순간 창이 뒤바껴요. 저 스스로 면담자의 마음을 볼수 있게 되죠. 면담자가 제게 했던 말 중에 가장 큰 찬사는 ‘내가 평생에 한번도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은 나의 질문을 당신이 했다’며 ‘그걸 답하면서 내 인생을 한번 매듭을 짓게 됐다’고 말했을 때에요. 카메라를 통한 관찰이 어느새 면담자의 내면, 심지어 당사자까지도 볼 수 없던 면모를 보게 만든거죠. 그런 찬사가 내게 제일 고마웠어요.

한: 대표작 영화 ‘사이에서’, ‘길 위에서’는 각각 무당과 비구니 스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요. 영화를 제작할 때 염두에 두는 기준이 있나요?
이: 영화를 만들 때 제 관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처음부터 남이 보고 싶은 것을 만들면 내가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다큐멘터리가 장르 특성상 아주 거창한 결과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제작에만 최소 1년에서 2년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래서 주로 그 당시에 내가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을 찍고자 했어요.

한: 지금은 대학원 교수님으로 계시는 데요.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부유하다 한 곳에 정착한 느낌이에요. 현재 위치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 5년 동안을 돌이켜 봤을 때 제대로 선생님 노릇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 자리에 있어도 의미가 없다면 그만두자는 식으로 살아왔는데 요즘은 5년 만에 처음으로 정말 선생님 자리에 온 기분이에요. 진짜 선생님 역할을 하려니 정말 바빴어요. 학생들과 면담을 하거나 수업을 준비할 때 성취감이 느껴졌어요.

한: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좀 대안적인 거예요. 다큐멘터리 영화는 집약적인 작업이 아니라 장기적인 일이에요. 촬영 기간만 해도 1년이 넘게 걸리니까요. 지금은 교수직에 있다가 영화를 만들며 위안으로 삼는 정도에요. 스스로 치유하는 거죠. 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있어요. 최근 호스피스를 주제로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누가 보러 오겠냐고 했어요.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는 소소한 규모라 제가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죠.

한: 혹시 인생에 대해 조언해주실 말이 있나요?
이: 예컨대 신포도 효과라고 하나요. 이솝우화에 나오는, 아주 맛있게 생긴 포도가 있는데 아무리 뛰어도 안 잡히니까 저 포도는 신맛일 거라고 생각하는 여우의 이야기요. 사람의 인생에 포도는 몇 번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포도를 발견한 순간 가랑이가 찢어질 때까지 뛰어야 해요. 조금 시도하다 안 되면 그 포도가 신포도라고 규정해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그 포도가 기억 속에 남아있다면 그건 자기 인생에서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봐요.

도움 이윤수 기자 dldbstn12000@hanyang.ac.kr
사진 장예림 기자 eeeeeeeeja@hanyang.ac.kr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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