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
불안한 삶
  • 두안진 <정치외교학과> 동문
  • 승인 2014.05.12
  • 호수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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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전’으로 분류되는 소설이나 사회학 서적들을 읽다보면, 한 시대를 대표적으로 묘사하는 병명(病名)들이 자주 나온다. 중세부터 산업혁명 시기까지는 페스트나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이 등장하며, 이데올로기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세계대전부터 냉전까지는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병이 주로 언급됐다. 그리고 요새 나오는 서적들은 ‘우울증’을 주요 테마로 삼는다.

우울증이 소설이나 사회학 서적, 그리고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는 이유는 말 그대로 우울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우울증이 특정 환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증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각자의 삶에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인 병을 앓고 있다면, 이 병은 더 이상 병이 아니라 사회 현상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울증을 겪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견해가 있겠지만,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고찰하자면, 우울증은 심한 불안감에서 오는 증상이다. 그리고 이 불안감은 사회에서 낙오되거나 뒤쳐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노력해도 노력한 대가를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무가치하게 인생을 소모시키다가 늙을지도 모른다는 패배감에서 비롯된 불안감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사회적으로 내적 불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전형적인 개인적 감정으로 폄훼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이 겪는 막연한 불안감은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느끼고 겪는 감정과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불안감이 아닌 사회의 불안감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불안감은 ‘정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인생에서 조금 더뎌지고 실수한다 할지라도, 다시 나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내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가? 타자를 위해 인생이 소모되지 않고 나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소외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은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으며, 얼마만큼의 안전망이 마련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만족할 만한 대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게임 속에서 공정한 규칙과 안전망을 얻지 못한다면 누가 섣불리 게임 속에 뛰어들려고 하겠는가? 불확실 속에 답이 있고, 불공정함을 이겨내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고 하지만, 애초에 상황이 정의롭다면 불확실과 불공정함을 견딜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확실과 불공정함을 견디는 것이 그토록 효율을 외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적인 경기 방식인지 조차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어린 학생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 속에서 사는 이유는 우리 개개인의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물론 능동적인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개개인이 문제의 근원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를 감시하고 채찍질하는 내적 시선을 거두고 사회를 바라보는 외적 시선을 가져야 한다. 좀 더 엄격하고 이성적인 눈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을 감시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지난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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