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한대신문
  • 승인 2014.04.28
  • 호수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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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다. 이렇게 온 나라가 슬퍼하는 데에는 참사의 희생자가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 어린 생명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누구의 손길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깊고 어두운 바다 속이다. 부모와 사회의 품안에 있어야 할 어린 생명들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자신들의 무능함에 절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특히 기성세대들 중에는 이러한 무능함에 대한 절망뿐만 아니라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연일 참사의 원인에 대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성세대들의 의식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체제에 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늘 젊은 세대들을 향해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의 바탕 위에서 풍요와 행복을 누리는 선택받은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식민지와 해방, 분단, 산업화, 민주화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온갖 질곡을 딛고 너희들에게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을 물려주었다는 이 땅의 기성세대들의 의식은 일종의 피해망상이 빚어낸 자기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풍요와 행복만을 물려준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과연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청춘다운 청춘이 있느냐?’하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들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몰개성적이고 반자율적인 교육제도와 윤리의식의 부재, 모순되고 부조리한 분배논리에 대해 부정과 저항보다는 무한 긍정의 자기 착취로 일관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 속에서 길들여지고 있는 아이들이 과연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서 ‘경주리조트 붕괴 사고’, ‘천안함 폭침’, ‘씨랜드 화재참사’ 등에서 희생된 젊은 청춘들은 기성세대들의 의식과 이들이 만들어놓은 모순되고 부조리한 제도와 체제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젊은 청춘들의 피로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가리고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씻으려고 하는가! 우리 기성세대들은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이 청춘다운 청춘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또 그들의 빼앗긴 청춘다운 청춘을 찾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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