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뒤에 남겨진 것들
랭킹 뒤에 남겨진 것들
  • 금혜지 편집국장
  • 승인 2014.04.01
  • 호수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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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로운 연예 뉴스를 봤다. 한 걸그룹 멤버가 ‘세계 미녀 순위’ 2위를 차지했다는 기사였다.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는 참가자들이 미모로 ‘경쟁’을 한다. 아름다움에 진선미라는 등급을 매기는 것도 영 찜찜하지만, 어쨌든 이건 자발적인 경쟁이다. 하지만 세계 미녀 순위에 랭크된 여성들은 미국의 한 영화 사이트에서 미모를 ‘평가’ 당한 것이다.

‘누가 몇 위’ 라는 정보는 자극적이다. 자극적인만큼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랭킹이라는 도구가 도처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순위를 내는 과정에서의 ‘평가’는 폭력적이다. 평가라는 단어에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와 순위라는 폭력은 비단 ‘세계 미녀’ 같은 가십거리에 뿐만 아니라, 지성의 장이라 여겨지는 대학에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유학 서비스 기관에서 ‘세계 대학 랭킹’을 발표하고 학보사 편집장들과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우리 학교는 350~400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 국내 대학 중 마지막 순서로 순위권에 든 학교 학보사의 편집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간신히 그 간담회의 초대권을 받을 수 있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간담회에 참석했지만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사기업에서 자원을 소비해가며 굳이 대학평가를 실시해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추상적이었다.

대학을 평가해 랭킹을 매기는 기관이 이 유학 서비스 업체 뿐이었다면 그저 씁쓸하게 웃어 넘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기성 언론’이라는 일간지와, 대한민국 경제와 동의어로 여겨지는 대기업까지 나서 대학교에 순위를 매기고 있는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순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평가 자체의 공신력이나 기준, 과정 등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딱 떨어지는 숫자 옆의 대학명은 매우 단편적이지만 자극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부터도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당연히 마음속에는 가고 싶은 대학의 서열이 정해져 있었지만 신문에서 그것의 순위를 숫자로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말로 전해 들었을 뿐이었던 정보가 ‘똑똑한 신문 기자들’에 의해 힘을 얻었던 것이다.

지금에야 학생 기자로 일하면서 기사를 작성하는 입장도 되어봤고, 전공으로 미디어를 공부하면서 언론에 나오는 정보를 그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어떤 랭킹이든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몇 년 전의 내가 그랬듯-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평가의 본질적인 필요성이나 과정의 공정성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이 ‘총장 추천제’를 발표했을 때 논란이 일었던 일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처음 삼성에서 대학별 할당 인원을 발표했을 때에도, 대학교 이름이 순서대로 줄 지어 있는 표 이미지만 SNS를 통해 나돌았다.

심지어 학교 홍보팀에서 관리하는 페이스북 계정은 이 표에 3번째 순서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학교에 빨간 밑줄을 쳐서 업로드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교수님은 삼성의 최근 행보를 언급하며 “학자로서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교수님이 그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용자들이 랭킹이라는 숫자에만 집중할수록 평가 주체의 권력은 커진다. 어쩔 수 없이 평가 대상이 됐다면, 랭킹에 일희일비하고 순위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것 보다 평가의 틀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최근 학교의 행보를 보면 이와 반대의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언론이나 기업에서 제시하는 평가 지표가 아니라 강의의 내실화, 교육 환경 개선, 학생 자치 등 학교 내부에 집중할 때 대학은 지성과 학문의 장으로써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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