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들의 눈물
‘민달팽이’들의 눈물
  • 김지수 기자, 금혜지 기자
  • 승인 2014.04.01
  • 호수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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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특집 ① 대안의 대안이 필요하다>

고향이 울산인 한순이는 긴 수험생활을 끝내고 올해 한양대학교의 새내기가 됐다. 합격의 설렘과 기쁨도 잠시,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홀로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 생각을 하니 우선 어디서 살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기숙사는 수용인원도 적고 전형별 성적순으로 기숙사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추가합격을 한 한순이는 뽑힐 확률이 낮다. 자취를 시작하기엔 1,000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과 40만 원의 임대료가 부담될 뿐만 아니라 뉴스에 매일 같이 나오는 안전 문제도 걱정이다. 하숙도 알아봤지만 「응답하라 1994」의 ‘신촌하숙’처럼 손 큰 주인집 아주머니가 매일같이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는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먼 이야기로만 여겨졌던 ‘대학생 주거문제’가 직접 와 닿는 순간이다.

‘대학생 주거문제’는 정부의 정책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본지 1360호와 1361호에서는 대학생 주거문제를 다룬 기사 <서울로 내던져진 학생들 “만족할만한 거처 찾기가 어려워요>와 <우리의 신음소리, 이제는 들어주세요>가 게재된 바 있다. 당시 기사에서 주거문제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성동구 해피하우스 제도 △SH 희망하우징 정책이었다. 그 후로 약 2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들은 대안으로써 잘 기능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해피하우스’, ‘해피’하지만
성동구 해피하우스는 2011년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터미네이터'와 성동구가 연대해 추진한 사업이다. 버려진 집을 찾아 기반시설은 성동구에서, 내부는 집주인이 맡아 수리한 후 주변 시세보다 싼 임대료로 대학생과 저소득층에게 제공하고 있다. 시행된 지 약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월 15만 원의 저렴한 임대료를 유지하고 있다. 학생은 주변 시세보다 싼 임대료에 집을 구할 수 있는 동시에 집주인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구청에서도 관리해야 할 빈집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석 삼조의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해피하우스를 추가 및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 소유의 집을 수리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과 집주인의 협력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해피하우스는 52명이라는 적은 인원만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신청해도 들어가기가 힘들고 대기기간이 유동적인 편이다. 심경환<인문대 영어영문학과13> 군은 지난해 기숙사에서 떨어지고 성동구 해피하우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나 정보를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심 군은 “인터넷으로는 정보를 찾기 힘들었고, 신청도 구청에 직접 전화해야 신청할 수 있었다”며 절차상의 불편함을 전했다. 실제로 해피하우스에 머물렀던 익명을 요구한 A는 “가격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관리하시는 분들도 모두 친절했다”라며 해피하우스의 장점을 언급했지만 “통학 거리가 애매하고 룸메이트가 있는 관계로 공부에 방해되어 나왔다”고도 말했다.

해피하우스는 2011년 총학생회 '터미네이터'와 함께한 사업이었지만 현재는 추가 입주지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사업이 정체된 것으로 보인다. 재작년 총학생회 ‘리얼플랜H’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집값 부담 탈출을 위해 ‘체인지 왕십리’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기숙사 환경 개선과 수용인원 확대 등의 성과를 거뒀지만, 왕십리 해피하우스 추가 및 확대 공약은 시행되지 못했다. 현재 총학생회 '클래스 업'은 수업의 질을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주거와 관련하여 뚜렷한 공약이나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SH 희망하우징과 LH 대학생 전세임대  
대학생들의 주거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시 지자체와 정부가 나섰다. 서울시 지자체에서 내세운 ‘희망하우징’이란 서울특별시와 SH공사(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시행하는 사업으로, 매입한 다가구주택 및 원룸을 대학생에게 저렴하게 제공한다. 냉장고, 세탁기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보증금 100만 원에 월 8~10만 원으로 거주할 수 있다.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제공하는 대학생 전세임대 역시, 학생들이 자신이 거주할 전세주택을 찾아 신청하면 LH공사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입주대상자로 선정된 대학생에게 저렴하게 재공급 해주는 사업이다. 저소득가구 대학생의 경우 임대보증금 100만 원과 월 임대료 11만 5천 원, 일반가구 대학생의 경우 임대보증금 200만 원과 월 임대료 17만 원에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학생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다음 사례들은 이 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난 경우다.

△부족한 공급량, 누가 더 가난한가
올해 대구에서 올라온 대학생 김소현(가명)양은 SH 공사의 희망하우징을 신청했지만 수많은 대기자에 밀려 예비번호를 받았다. 1순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나 2순위 차상위계층 자녀에 속하지는 않지만 1,000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손쉽게 마련할 정도로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현재 SH공사에서 제공하는 희망하우징은 대상자를 6개 순위로 나눠 329호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수요와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란 개수다. LH 대학생 전세임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14년도 입주자 모집에는 4.3: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신청자격을 대폭 조정하고, 저소득층 수혜대상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경쟁률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허울뿐인 당첨
황은서<한성대 경영학부 13> 양은 LH 대학생 전세임대에 2순위였지만 한 번에 당첨됐다.  운좋게 합격했다는 기쁨에 올해 2월부터 학교 근처의 집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LH 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한 작업인 권리분석을 몇 번 의뢰했지만 모두 선순위임차보증금에 제약이 걸렸다. 만약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리분석을 의뢰한 집 중 한 곳에는 기존에 LH 대학생 전세임대 사업을 통해 들어온 학생이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을 당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부터 그 건물이 위반건축물이 됐다는 것이다.

학교 근처의 집을 포기하고 통학권까지 확대해서 찾아보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들어갈 집을 구하지 못했다. 황 양은 “LH 대학생 전세임대의 취지는 좋지만 조금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약 해지 건수의 증가
희망하우징에 신청했지만 떨어졌던 김민수(가명)군은 오랜 대기 끝에 입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혔다. 10평도 되지 않는 공간을 2명이 나눠 쓰면서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기숙사 형태로 돼 있지만, 분쟁을 조정해줄 관리자나 관련 규칙이 없다. 도시가스료나 공동전기료 같은 공동요금도 자율적으로 배분해야 할 뿐 아니라 청소 등의 업무를 분담해야 해 싸움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현재 대학생은 개인 생활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다가구형 희망하우징의 계약해지 건수가 3년 사이 20배 급증했다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청년대학생 주거모임인 ‘민달팽이 유니온’의 오탁근 사무국장은 논문 「민달팽이 유니온 소개 및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지원 사업 실태 및 대안」에서 “한국 사회의 주거문제는 대개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 왔을 뿐 주거권 측면에서의 접근은 부족했다”고 했다. 또, “LH의 전세임대주택 지원도 청년 주거 당사자 운동에 대한 상당히 큰 규모의 반응이었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학생 주거문제에 대한 많은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1403호 주거특집 <②주거형태는 만들어가는 것이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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