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거주지를 모두의 관광지로
누군가의 거주지를 모두의 관광지로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4.01.06
  • 호수 13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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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마을에 색감을 입히다

달동네는 유난히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등장한다. 어느 곳이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절박한 형태의 주거 지역에서, 가장 극적인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조세희의 단편소설「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공간적 배경은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판자촌이자 철거 예정지다. 실제로 그 지역이 어디쯤인지는 작품 속에 드러나지 않지만, 작가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열린 강연에서 “바로 이곳에서 ‘난쏘공’이 시작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구로 디지털단지가 들어서기 전 2.5평짜리 판잣집이 빼곡했던 이른바 ‘벌집’이 소설의 근원지인 것이다.

2007년 개봉했던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도 마찬가지다. 재개발 예정지인 ‘1번가’ 사람들을 거주지에서 몰아내려 등장한 필제(임창정 분)와 동네에서 살던 복서 명란(하지원 분)의 관계가 극을 이끈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곳을 사람들은 ‘달동네’라 부른다. 달동네는 달이 보일만큼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도시 외곽의 산등성이나 산비탈 등 비교적 높은 지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볼품없는 건물은 철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고, 두 작품에 등장하는 것처럼 달동네를 위협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재개발’ 정책이다. 하지만 최근 달동네를 재개발하는 도구는 포클레인과 불도저가 아닌 붓과 조형물이 되고 있다.

 

용구와 예승이의 동네, 개미마을

홍제동 개미마을은 서울시 서대문구, 인왕산 산자락에 위치한 달동네다.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은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것이다. 이곳은 영화「7번방의 선물」의 몇 장면이 촬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 해 이 영화가 약 120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한 이후로 조금씩 알려지며 방문객이 늘어났다.

▲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 주택에 그려진 벽화

마을이 형성된 것은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젊은이들과 한국전쟁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모여들면서 부터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천막을 짓고 사는 모습이 인디언 부락 같아서 처음에는 ‘인디언촌’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며 천막은 무허가 판잣집들로 변했다.

앞서 나타난 문학 작품에서처럼, 70년대에는 이 마을에도 몇 차례 철거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마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은 2009년, 한 건설회사의 후원 아래 서울에 있는 5개 대학의 미술학과 학생들이 참여한 마을 벽화 프로젝트 ‘빛 그린 어울림 마을’이 시작된 후부터다. 벽화는 ‘환영’, ‘가족’, ‘자연’, ‘영화 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 등 다섯 가지 주제를 놓고 그려졌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그린 벽화는 마을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곳에 방문한 관광객 A씨는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벽화 마을의 모습을 담기 위해 출사를 나왔다”라며 개미마을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주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벽화가 그려지니 마을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다”라며 “아무 관리도 되지 않은 골목이나 전시만을 목적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레고로 조립한 듯한 부산의 산동네

내일로 여행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활성화되면서 방학이 되면 한번쯤은 사진을 보게 되는 곳이 있었다. 부산 여행의 새로운 코스로 등장한 ‘감천 문화마을’이라는 곳이다. 바다에 맞닿은 산동네에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판자촌에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예술작업을 진행한 이 마을은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그림이 된다. 취재를 위해 기자는 이곳에 직접 방문해 봤다.

일명 태극도 마을이라 불리는 감천동, 부산의 산동네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 초부터 원래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에 조선인의 인구가 급증하게 돼 부산의 근대화에 따라 농민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부산의 인구는 증가했지만 이에 비례한 주거 공간은 부족하였다. 따라서 조선인은 산비탈 하천변 등에 움막을 짓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은 산동네를 더욱 빼곡하게 만들었다.

신년에 본 기자와 함께 여행을 하며 이곳을 여행 코스로 추천한 김수민<이화여대 사회과학부> 양은 “부산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페이스북을 보면 정말 그리스의 산토리니 같은 풍경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라며 “부산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번 직접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추천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당시 아름다운 광경 외에는 감천마을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해운대에서 묵었던 숙소 주인에게 추천받은 대로 자갈치시장에서 감천마을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비는 4천원 정도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깝지 않았을 만큼 마을의 입구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관민협력 우수마을 사례 최우수상’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마을로 들어서자 사투리를 쓰지 않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눈이 닿는 곳마다 크고 작은 미술작품들이었다. 주민들이 직접 색칠한 물고기 모양 나무판자 조형물부터 전문 화가가 그린 대형 벽화까지 온 마을이 야외 전시관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좁은 골목에도 길을 찾을 수 있게 화살표가 곳곳에 그려져 있었고 이를 따라가다보면 길을 잃지 않고 골목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마을이 갤러리로 변하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시행된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와 2010년 ‘미로미로(美路迷路) 골목길 프로젝트’의 역할이 크다.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는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으로 진행된 ‘빈집 프로젝트’와 ‘골목길 프로젝트로’ 나뉘어 있다. ‘빈집 프로젝트’는 감천 2동의 빈집들 중 6채의 집에 작품을 설치했고, ‘골목길 프로젝트’에서는 골목길 곳곳에 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했다.

2013년의 마지막 해넘이를 보기 위해 하늘정원에 올라가는 길에 잠깐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그 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중이었던 꼬마 아이를 만났다.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으니 “저쪽으로 가씨요”라며 우리가 가는 길을 강아지와 함께 인도해줬다. “너 사는 곳에 사람들 많이 왔다 갔다 하니까 귀찮지 않니”라고 물으니 “내는 사람 많은게 좋아요”라며 웃었다. 바다와 산, 집과 골목과 예술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마을에서 맞이한 작년의 마지막 날이 꿈같다.

동쪽 벼랑의 마을

어느 천사가

가난한 날의 등에

무수한 키스를 남겨놓고 떠났을까

골목담장마다 추억의 나무가 자라고

나뭇가지마다

천 개의 손이 열려있는 동네

철부지 아이들이 시간 속으로

뛰어다니고 오색물고기가

언덕을 타고 오르는 동네

이명윤 시인이 쓴 「동피랑」이라는 시의 구절이다. 통영항 중앙시장 뒤편, 남망산 조각공원과 사이 언덕배기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동피랑이라는 이름은 ‘동쪽 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외지 하층민들이 기거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 또한 벽화를 통해 최근 몇 년 사이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고, 그 전에는 철거 예정지였다. 통영시는 이전에 있던 마을을 철거하고 충무공이 설치한 옛 통제영의 ‘동포루’를 복원하려고 계획했다. 주민들은 약간의 보상비를 받고 마을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2006년 11월 ‘푸른 통영 21’이라는 시민단체가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며 공모전을 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전국 각지에서 미술학도들이 몰려들었고 골목 곳곳마다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졌다. 허름한 달동네가 바닷가 절벽에 위치한 벽화마을로 새로 태어났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이 입소문을 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200~300명의 여행객이 찾는다고 한다.

▲ 통영 동피랑 건물에 그려진 벽화의 모습

한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벽화가 나타난다. 커다란 고래가 그려진 벽화도 있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그림도 있다. 온통 푸른 바다로 가득 찬 벽도 있다. 골목 중간쯤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아찔하다. 통영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옆에는 공중에 그려진 바다가 또 펼쳐진다. 예술이 주체가 된 재개발은 적어도 책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재개발의 현장처럼 절박하지는 않았다.

참고 : 논문 「문화예술을 매개로한 도시재생 전략에 관한 사례연구」「문화예술 기반 도시재생」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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