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깍쟁이 여러분
한양대 깍쟁이 여러분
  • 김종수<서울시청 행정사무관>
  • 승인 2013.11.30
  • 호수 13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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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인 나는 최근 유행하는 <응답하라 1994>를 상당히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드라마의 인기가 신기하기도 하다. 필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기에 공감하는 코드가 많아 재밌지만 어린 친구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도, 물건도 심지어 마인드도 지금과 달라 감정이입이 안 될 텐데, “왜 인기가 많은 걸까”라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나온 장면에서 한 여학생이 결제를 하고는 “넌 3000원, 넌 사이다 시켰으니 3500원을 나에게 줘”라고 하니 주인공 남자는 “우리 하숙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서울사람을 깍쟁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깍쟁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새 내 자신의 이익과 나의 성공을 위해 모두들 깍쟁이가 되었다. 양보와 배려를 하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고 상생이나 공동체라는 말은 정치에서나 하는 구호로 남아있다. 몇몇 대학 후배들을 봐도 회사에 다니는 내 삶보다 더 팍팍하다. 영어는 네이티브 수준으로 해야 하고 자격증은 기본이고 학점 관리와 봉사활동 실적 등등. 요즘 대학생들에게 ‘낭만’이나 ‘열정’은 오히려 사치로 보인다.

과연 누가 대학생의 낭만을, 캠퍼스의 열정을 없애버린 걸까. 물론 우리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졸업생 수보다 일자리의 수가 훨씬 적은 경제 환경과 주변을 돌아보기엔 너무 빨리 변하는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낭만을 찾는 대학생으로 남았다가는 백수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90년대에도 그랬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취업난은 ‘사상초유’라는 단어가 앞에 자주 붙지만 누구나 자기가 졸업할 때는 그때가 제일 채용이 적은 것 같고, 본인이 시험 볼 때 수능이 어려운 것 같고, 입시제도가 잘못된 것 같고, 나를 채용하지 않은 회사의 채용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 다시 드라마 이야기를 해보자. ‘깍쟁이’ 그 단어에 답이 있다. 우린 모두가 너무나 깍쟁이 같이 살고 있다. 내가 양보하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밟고 앞으로 가야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 깍쟁이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근저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이들 배고플까봐 고봉밥을 퍼주는 하숙집 어머니, 본인의 공부도 바쁘지만 후배의 진로 상담을 성심껏 들어주는 선배, 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도 좋아하는 여자가 밥을 안 먹었다고 하니 배고픈 척 또 먹는 남학생 등 이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따듯하다. 깍쟁이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어 주기를, 내 친구나 내 부모가 그러하기를 모두 원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모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따듯한 사회는 나 하나의 작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내가 먼저 깍쟁이가 되지 말아보자. 그렇다면 팍팍한 이 사회도 변화될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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