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소녀의 꿈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소녀의 꿈
  • 이윤수 기자
  • 승인 2013.11.30
  • 호수 13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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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의 코믹월드 방문기
「화성인 바이러스」 라는 프로그램에서 ‘십덕후’ 라 불리는 출연자를 본 적이 있다. 6년 동안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베개 ‘페이트짱’ 과 함께 모든 생활을 같이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베개와 함께 밥을 먹는가 하면 결혼식까지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 내용은 인터넷, SNS를 통해 일파만파로 퍼져 웃음거리가 됐고, 일부 대중은 ‘십덕후’의 모습을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 일반화하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자 또한 그와 같은 생각을 떨치지 못했고, ‘십덕후’라는 색안경을 끼게 됐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헤치고 120회 서울코믹월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양재A.T센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원형으로 생긴 행사장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90년대생들이 즐겨봤던 「포켓몬스터」 캐릭터부터 영화 「어벤져스」의 아이언맨까지 코스프레의 세계는 다양했다. 코스프레어들은 캐릭터별로 특징을 살린 분장과 의상을 입고 저마다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신기하고 놀랍기도 했지만 처음 느끼는 문화 충격에 ‘십덕후’ 라는 고정관념은 더 확고히 자리 잡는 듯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고정관념은 한 소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산산조각 났다.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12살 소녀였다.

질문이 다소 직설적으로 들릴 수 있었겠지만, 그들의 솔직한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십덕후’라고 비판받는 것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소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을 했다. “연예인이 좋아서 생긴 팬덤 문화는 높게 평가받고, 만화를 좋아해서 생긴 팬덤 문화는 왜 낮은 문화로 취급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답변이다. 소녀의 대답이 무시당하는 만화 마니아층의 설움을 대표하는 것 같았다. 우리 사회가 ‘십덕후’ 라는 색안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만화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잘못된 색으로 비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12살의 당찬 소녀는 만화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그녀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행사에 참여해 어린 소녀의 꿈을 응원하고 있었다. 순수하게 만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소녀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대중들이 저 순수한 만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냉소와 비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해 안타까웠다. 바로 고쳐지긴 어렵겠지만 사회적으로 이들의 문화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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