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훔치다
당신의 마음을 훔치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11.23
  • 호수 13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C 박태호 씨

총학생회선거가 한창인 계절이다. 당선된 선본이 가져올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와 뜨거운 열정이 캠퍼스에 불어오고 있다. 봄바람 같은 기대는 잠시 뒤로, 역대 ‘학생대표’란 이름을 가졌던 학생들의 현재에 주목해보자. 박태호씨는 ERICA캠퍼스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MC’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누가 학생회 경험이 MC란 꿈을 안겨줄지 예상했으랴. 시작은 언제나 갑자기, 그리고 달콤하게 찾아온다


“시작은 언제나 갑자기”
한대신문(이하 한): MC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태호 씨(이하 박): 처음에는 제가 ‘MC’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보통 사람처럼 MC는 개그맨이 겸업으로 하는 일 정도로 생각했죠. 단지 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기회가 생길 때, 그들이 제 말에 웃고 즐거워하는 게 좋다는 생각은 들었죠. 그런 모습을 보며 제가 말하는 걸 꽤 잘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전문적으로 직접 제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한: 그런데 구체적으로 직업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박: 작년 부회장이었을 때, 봄 축제로 ‘끼 페스티벌’이 열렸어요. 그런데 공연 도중 무대가 지연돼서 MC가 공석이 되는 사태가 났어요. 그때 갑작스럽게 제가 MC를 보게 된 거죠. 이전에 조그만 행사에서 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끼 페스티벌처럼 그렇게 학생이 많은 행사는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반응이 꽤 좋았고, 총장님도 절 칭찬해 주셨죠. 처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을 많은 사람 앞에서 보여준 건데 반응이 괜찮아 기분이 좋았죠.

한: 당시 경험이 결정적 계기가 된 거예요?
박: 네, 제겐 직업에 있어 신념 같은 것이 있어요. 직업을 택하는 데 세 가지를 충족해야 잘할 수 있다 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스스로 잘하는 일인지, 남들이 봤을 때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세 가지가 합치돼야 성공한다고 봐요.
축제 때 사회를 보기 전에는 MC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남들의 피드백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사실 무섭더라고요. 무슨 말을 듣게 될지가요. 근데 그런 뜻밖의 기회로 인해 강제적으로 피드백을 듣게 된 거죠. 제게 어쨌든 전환점이 됐던 날이죠. 제가 생각한 일에서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어요.

한: 그 밖의 MC가 되고 싶은 다른 이유는?
박: 사실 MC란 직업이 정말 복합적이에요.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게 많아요. 방송이 여러 요소가 집약된 분야이다 보니 어떤 사건이 생길지 알 수 없어요. 그러다 보면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 때문에 미리 짜인 계획과 달라질 때가 있어요. 고정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매번 순발력 있게 변화시키는 일이 좋더라고요. 또 행사 성격에 따라 자신의 이미지도 바꿔야 해서 지루하지 않아요.

“나 때문에 못 온 거 아니거든!”
한: 현재 ‘MC 후리’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름의 의미는?
박: 사실 제가 보통 MC치고는 나이가 어린 편이에요. 대부분은 30대 이상이거든요. 너무 어린 나이에 마이크를 잡으면 원숙미가 안 느껴지고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봐요. 제 그런 점을 반대로 이용해 좀 젊은 느낌이 나면서 톡톡 튀고 예명을 갖고 싶었어요. 자유롭다는 의미에서 ‘Free’와 비슷한 발음인 ‘후리’란 단어를 쓰려 했죠. 또 사람들의 마음을 ‘후리’다는 의미도 있잖아요. 편안하게 다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다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어요.

한: 진행방식에 있어 MC마다 특징이 있지 않나요?
박: 당연히 있죠. 전 말하자면 ‘사기형’이에요. 보통 MC는 대부분 주특기가 하나씩 있어요. 풍선이나 마술, 비트박스, 춤 등 다양한데 전 하나도 특출한 게 없어요. 그래서 거짓으로 만들어 내죠. 비트박스를 잘하는 친구에게 음원을 받아다 무대 위에서 하는 척해요. 관중 분위기가 고조되면 가짜인 걸 보여주는 거예요. 사실을 알게 된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면 분위기도 좋아지죠.

한: 잘못하다간 반응이 오히려 더 험악해질 수 있겠는데요.
박: 스스로 잘 조절해야죠. 새침하게 하하.

한: 보통 행사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당황했던 경험이 있나요?
박: 올 봄 건국대 축제에서 MC를 보게 됐는데 진짜 사람이 많았어요. 보통 외부 공연이 많으면 진행표대로 이뤄지기 쉽지 않아요. 그날도 가수 빈지노가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 안 오는 거예요. 빈지노가 안 오자 사람들이 저를 욕하기 시작했어요. (관객들은) 제가 올라와 있어서 빈지노가 못 올라온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10분 정도 늦겠다고 생각해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다가 욕을 왕창 들었어요. 지금은 알람 음악이 빈지노 노래인데 정말 들으면 잠이 확 깨요.(웃음)

한: MC를 보며 보람 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박: 대전대학교 축제에 갔는데, 한 학생이 안성에서 돌잔치 해주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예전에 돌잔치 MC를 자주 했는데 그때 오신 분 중에 저를 기억해주신 분이었어요. 사실 부끄럽기도 했거든요. 왜냐하면, 돌잔치 행사는 MC중에서도 그렇게 좋은 급은 아니에요. 아르바이트들도 많고요.
그런데 나와 아무 연고가 없는 도시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감격했어요. 당시 방송으로 빨리 뜨고 싶었는데, 작은 행사 하나도 하나의 인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하나 인연을 쌓는다면 성공할 것 같아요.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한: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으세요?
박: 우리나라 개그맨 정말 많지만 그중에 사람들이 알아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래도 그분들은 본 직업이라는 게 있잖아요. 개그맨이란 명칭이 있어 수당이나 섭외에 정당성이 있어요. 그런데 항상 스스로도 괴리감이 좀 드는 게 내가 하나의 상품이라 생각한다면 왜 나를 써야 하느냔 생각을 많이 해요. 왜냐면 이 분야엔 나 같은 사람이 많거든요. 어떤 게 절 더 특화할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하죠.

한: 부학생회장이나 나온 학과가 MC에 도움이 됐나요?
박: 이렇게 활동하시는 분이 거의 없어요. 그니까 흔히 말하는 학연이나 지연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란 게 전혀 없는 거예요. 시작과 동시에 백지에서 시작했어요. 더군다나 이쪽 분야에서 뭔가 가르쳐 줄 사람도 없으니까 좌절도 많고 배움도 더뎠죠.

한: 그래도 방송 ‘불만제로’도 나왔는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예요?
박: 부딪쳐 보자는 심정으로 MBC 아카데미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알게 된 리포터분이 ‘불만제로’가 새롭게 개편되면서 사람을 구한다며 한번 작가에게 이력서 보내보라고 했죠. 한 일주일 있다가 전화가 왔어요. 알고 보니 자리는 딱 한 개인데 그 자리에 100명 정도 왔더라고요. 전 하도 쓸 게 없어서 돌잔치를 백 몇 번 했다고 썼어요. 면접관으로 온 PD는 제게 관심이 없었죠.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전 누구보다 그 역할에 자신 있다고 말했죠. 그러자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어요. 제가 수없이 했던 돌잔치 행사를 그곳에서 보여줬죠. 면접장이 웃음바다가 됐고, 전 합격했어요.

한: 이제는 좀 더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선 거네요.
박: 네, 예전에는 이 세상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조금 다르죠. 같은 MC끼리도 서로 힘든 거 아니까 모임도 만들어 활동 중이에요. 서로 좋은 의견을 공유하며 재밌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많이 행복해졌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