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스펙·술 없이 놀아 보자
과제·스펙·술 없이 놀아 보자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3.11.16
  • 호수 13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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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만든 가을 운동회, ‘대학세력전’
‘대학 문화’라는 단어는 실체가 없는 단어가 돼 버렸다. 분명히 각자의 대학생들은 나름대로 문화 생활을 누리고는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을 수 없을 만큼 산발적이라는 뜻이다. 지금과 비교해 대학생의 수 자체가 적었고 능동적으로 문화를 만들어 나가던 과거의 대학생들과 달리, 현재 대학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문화’라기보다 ‘학점’, ‘스펙’, ‘취업’에 가깝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획된 소셜 페스티벌이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대학의 정석’에서 기획한 ‘대학세력전(이하 대세전)’이다. 대세전의 기획과 홍보를 담당한 이우제 양은 “상업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스펙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라며 “서울에 사는 대학생들이 ‘2013년 가을에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나중에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대세전은 준비 과정에서부터 당일의 진행까지 모두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백룡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자원봉사단은 기획, 디자인, 영업, 홍보의 네 가지 부서로 나뉘었으며, 서울 시내 100여 명의 대학생들로 구성됐다. 본지 기자 또한 이 행사의 취재를 위해 직접 백룡회의 홍보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10일 행사 당일 아침, 기자는 잠실 보조경기장 현장에 현장 스태프로 참가해 티켓 확인을 담당했다. 애초에 ‘38만 대학생들의 가을 운동회’라고 홍보했지만, 가을이라기엔 유난히 추운 날씨였고 38만이라는 숫자에는 한참 못 미치는 대학생들이 모였다. 대세전의 참전권은 혜택별로 가격을 달리해서 소셜 펀딩의 개념으로 판매됐다. 원래 티켓은 행사 진행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판매됐지만, 행사 당일은 추위 때문인지 티켓을 구매해 놓고도 참가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운동회는 서울 시내를 4 등분해 각각 백호, 주작, 청룡, 현무 진영으로 팀을 이뤄 진행됐다. 서울의 북동쪽에 위치한 우리학교는 고려대학교, 건국대학교 등과 함께 주작 진영에 해당했다. 각 진영이 신나는 배경 음악에 맞춰 운동장 가운데로 입장을 시작했고, 참가자 대표의 선서와 오랜만의 ‘국민체조’가 이어졌다.
당일 모든 과정은 담당 스태프의 진행으로 ‘아프리카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TV조선·한겨레 등 언론사들의 취재도 이뤄졌다. 비록 예상보다 참가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날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진심으로 승부욕을 불태우며 온 힘을 다해 즐겼다고 자부할 수 있다. 입장 안내 업무를 마친 본지 기자가 직접 주작 진영의 일원으로 참여해 본 결과 내린 결론이다. 첫 게임은 각자의 발목에 풍선을 고무줄로 묶고, 다른 진영의 풍선들을 터뜨리는 게임이었다. 팀원들과 작전을 짜서 협공을 통해 풍선을 터뜨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피구와 달리 4개 팀, 4개의 공을 가지고 하는 ‘사방신 피구’ 게임이 가장 흥미로웠다. 언제 어디서 공이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감과 여러 개의 공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작전이 게임의 긴장감을 더했다. 놋다리밟기, 줄다리기, 계주 등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하는 운동회 게임들도 이어졌다. 이 외에도 ‘전공 책 판치기’와 같은 미니 게임, 후원사들의 이벤트 부스 등이 진행돼 메인 종목을 쉬는 중에도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많았다.

사실 당일의 참가자 수로만 따진다면 이 행사가 완벽한 성공으로 끝났다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 모인 인원들이 아무런 불만, 사고 없이 준비된 순서를 모두 즐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행사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술의 도움도없었고, ‘취업 준비’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지도 않았다. 항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도록 강요받았고, 내려 놓기를 두려워하는 대학생들이 힘겹게 뗀 첫 발걸음이었다.금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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