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목걸이 유감
카드 목걸이 유감
  • 이권우<도서평론가.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
  • 승인 2013.11.11
  • 호수 139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행에 민감하기는커녕 둔감하기까지 한 편인데, 학생들 사이에 특정 액세서리가 널리 퍼지는 현상을 눈치챘다. 언제부턴가 학생들이 너도나도 카드 목걸이를 걸고 다니지 않던가. 아마 학생증과 카드를 넣은 모양인데, 단지 실용적인 목적만 있지는 않다 싶었다. 그리 느낀 데는 이유가 있다.

삶의 행동반경이 넓지 않다보니 주로 광화문과 여의도, 그리고 홍대 앞만 다닌다. 점심시간에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보는 진풍경이 있다. 일군의 직장인이 카드 목걸이를 건 채 점심을 먹으려 몰려다니곤 한다. 물론 귀찮아서 그럴 수 있다. 보안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다 보니 사원증이 없으면 출입하기 어렵다.

걸고 있는 게 편하다. 그래도 밖으로 나오면 주머니나 작은 가방에 넣는 게 좋을 듯하다. 시쳇말로 개목걸이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더욱이 소속된 곳과 이름, 그리고 사진이 박혀있는 것을 남보란 듯이 매고 다니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이기도 하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 저것은 자랑하느라 매달고 있는 거구나’하고 말이다. 광화문이나 여의도에서 사원증을 목에 맨 사람이라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드러낼 일이지 숨길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대학이 취직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정부가 기업에 압력도 넣어보고 애걸도 해보지만 여전히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한 재벌기업이 신입사원을 5500명 뽑겠다고 했더니 무려 9만 명 가까이 몰렸다는 기사를 보면, 청년 세대가 겪는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최근 학생들이 카드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유행이 취업 문제에 대한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한, ‘직장인 코스프레’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해서 가까이 지내는 대학원생한테 물어보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로 결국은 목줄에 찍힌 마크가 더 중요하다 말해주었다. 종국에는 ‘어느 직장의 사원증을 매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번지고 있는 직장인 코스프레는 한 번쯤 되짚어보아야 한다. 카드 목걸이를 거는 것은 평생을 바칠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번듯한 직장을 가겠다는 마음이 더 앞섰다는 뜻이다. 걱정스런 대목이다. 최근 직장인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직장은 내가 일할 회사를 뜻하고, 직업은 내가 할 일을 말한다. 그런데 직장만 보고 들어온 후배들이 정작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고 방황하는 꼴을 자주 보았단다.

이 말을 들으며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공자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나이 마흔을 일러 불혹이라 했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요즘말로 치면 공자는 직장을 고르지 않고 직업을 택했다. 그 업이 비록 전망이 좋지도 않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소명의식이 있기에 택했던 바이다.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며” 그 길을 걸었는데, 나중에 보니 썩 잘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카드 목걸이를 벗어던지라는 말이 아니다. 혹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느라 매고 다닌다면, 한 번쯤 직업에 대한 고민도 해보라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