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거인, '진격의 망언'으로 소인이 되다
진격의거인, '진격의 망언'으로 소인이 되다
  • 손다애 기자
  • 승인 2013.10.28
  • 호수 13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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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A부터 Z까지

얼마 전 ‘진격의 식신’이라는 콘텐츠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오랜 시간 상위에 머물렀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정준하를 ‘진격의 식신’라고 이름 붙여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 한 것이다. 「무한도전」뿐 아니라 ‘진격의 햄버거’, ‘진격의 장미칼’등 다른 공중파 방송에서도 자주 그 패러디가 등장했고, 심지어 고양시는 지자체 홍보영상으로 ‘진격의 고양시’를 게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진격의 거인」은 각종 패러디물을 양산하고,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회자되며 인기가 치솟았다.「진격의 거인」이 국내에 들어 온지 약 4개월 만의 일이다.

「진격의 거인」은 일본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첫 작품이자 최대의 히트작이다. 그는 19살에 연재를 시작해 불과 4년 만에 유명인이 됐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단행본 판매량이 2천 만부를 돌파했으며 2011 전국 서점 직원이 선정한 추천 코믹 1위, 제 35회 고단샤 만화상 소년부문 수상 등의 기록을 세웠다. 「진격의 거인」은 왜 이렇게 국내외로 엄청난 흥행을 거둔 것 일까.

「진격의 거인」이 진격할 수 있었던 이유
첫째는 참신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재’를 채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란 ‘종말 후’ 라는 뜻으로 인류 종말 후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는 장르이다. 이 장르는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 쉽고 위험, 고통, 절망 속의 희망 등 인간의 다양한 심리묘사를 하기에 유리하다.

「진격의 거인」은 이 소재를 통해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인간의 저항과 그에 따른 고통과 절망을 그렸다. ‘식인 거인의 등장’이라는 설정은 좀비나 바이러스처럼 여타의 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닌 것이다.

평론가 문강형준은 본인의 저서에 “좀비 서사에서 인간은 좀비를 죽이는 데서 어떤 극복이나 희망의 계기를 찾지 못 한다”고 언급했다. 일반 좀비물은 좀비를 없앤다고 자신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닌 그저 진정한 ‘절멸의 서사’라는 것이다. 반면에 「진격의 거인」은 ‘싸워야만 이길 수 있다’라는 의지로, 거인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진보주의적 기운이 넘친다. 평론가 문 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 중에 이렇게 강력한 진보주의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작품은 드물다”며 “부정보다는 ‘희망’과 ‘꿈’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에게 「진격의 거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진보주의적 요소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는 탄탄한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소설이 원작인 「진격의 거인」은 탄탄한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여러 작품에서 세계관의 구성이 허술하고 일방적으로 설정돼 독자에게 의구심을 들게하는 사례가 많은데, 「진격의 거인」은 애니 속 세계의 역사부터 현재의 흐름까지 세세하게 정리돼있다. 거인, 성벽, 입체기동기 등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의 디테일한 유래부터 원리까지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애니메이션에 의문을 갖지 않게 한다.

세 번째는 이런 세계관 위에 다른 만화와는 구분되는 ‘스토리텔링’을 얹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방대한 양의 정보를 흘리지 않고 매회 마다 야금야금 시청자가 궁금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그리고 캐릭터를 다루는 모습에서도 여타 애니메이션과의 차별성을 둔다. 주인공이라고 어떠한 역경도 이겨내거나 절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주인공도 거인에게 잡아먹힌다는 잔인한 죽음을 부여함으로서 시청자도 함께 그 절망, 슬픔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나중에 주인공이 거인으로 변하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시청자의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는다. 「진격의 거인」을 시청한 염원섭<단국대학교 도자디자인학과> 군은 “처음에 주인공이 죽을줄은 몰랐다”면서 “예상외의 전개에 ‘주인공이 죽었으니 이제 영화가 끝나려나’라는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연출력을 더해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더했다. 「진격의 거인」은 일본 액션 애니메이션 분야의 여러 평가에서 1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에반게리온」의 뒤를 이을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애니메이션 초입부에 주인공이 넝쿨을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장면 등 속도감이 필요한 장면에서, 배경 건물 등 속도감 연출에 필요한 장면들을 깔끔하고 퀄리티있게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진격의 거인」은 완성돼 짧은 시간 안에 성공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격의 거인과 진격의 망언
이런 이유로 진격의 인기를 누리던「진격의 거인」도 이제는 다른 의미에서 화제의 이야깃거리가 됐다. ‘우익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지난 6월 아사야마 작가는 트위터에 “일본 통치 덕에 인구와 수명도 2배로 늘어난 조선인들인데, 민족정화를 당한 유대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해 우익 논란에 불을 지폈다.

또한 “등장인물 중 한명의 모델이 일본 육군 장군 아키야마 요시후루냐”는 질문에 “자신 따위가 이분을 모델로 하는 것은 우습고 황공한 일”이라며 “러일 전쟁의 일화도 대단하지만 원수의 자리를 박차고 시골 초등학교 교장을 맡아 평생 검소하게 지낸 일을 존경하고 있다”라고 밝혀 한국 팬들에게 ‘진격의 망언’이라며 격한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작품 이름 언급조차도 금기시 될 정도다. 진격의 거인을 본 진중권<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첫 회부터 등장하는 ‘곤충이 서로 잡아 먹는다’는 얘기가 전형적인 우익적 세계관에서 나오는 은유”라며 “작품에 우익 세계관이 깔려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함으로서 「진격의 거인」의 우익논란에 힘을 더했다.

박찬승<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하지메 작가의 발언에 “인구가 2배로 늘어났다는 것은 착각이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통계가 잘못 기록되어있었다”고 말했다. 수치로 보면 천 삼백만에서 이천 육백~이천 칠백만으로 마치 2배가 된 것 같지만 실제로 인구수는 천 칠백만 정도였다. 실질적으로 늘어난 양은 약 칠백만~천만 정도이다. 심지어 그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늘어나던 추세였기 때문에 조선이 일본의 통치 덕분에 인구가 늘어났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박 교수는 식민지배에 대해 “이웃집사람이 우리 집에 허락도 없이 살면서 ‘밥도 잘 먹이고, 잘 살렸다’ 하면 기분이 좋겠느냐, 똑같은 논리”라고 꼬집었다. 식민 지배를 당했던 한국인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우익논란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진격의 거인」불매운동과 같은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학생들에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견제,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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