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단어에 랩을 입히다
내 마음속 단어에 랩을 입히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10.05
  • 호수 13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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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래퍼 키비(kebee)

감성 힙합의 선구자, 최대 힙합 레이블 중 하나였던 ‘소울컴퍼니’의 대표. 이러한 호칭은 ‘kebee’에게 따라오는 수식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수식어 이전에 kebee는 마음속 단어를 종이 위에 그려보던 수줍은 소년일 뿐이었다. 지난 날의 낙서들은 어느새 랩이 되고, 이젠 수많은 사람이 소망하는 하나의 그림이 됐다. 최근 늦깎이 제대 이후 개인 음악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랩을 하게 된 이유는 조용한 성격 때문"
한대신문(이하 한): 최근 제대하고 전역하자마자 바로 개인 곡을 발표했는데, 이렇게 빨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kebee: 다시 음악이 간절히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제가 좀 공식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다 보니 더 하고 싶어져서 부지런히 준비한 것 같아요. 물론 학교생활도 마무리하기 위해 복학 했어요.

한: 중학생 때부터 꽤 오랫동안 힙합을 해 왔는데, 이 장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kebee: 사실 저 되게 내성적인 사람이거든요. 지금은 사회생활도 하고 나이도 들면서 조금 바뀌었지만, 중학생 때는 더 그랬어요. 말 자체를 잘 못했어요. 근데 랩 할 때만큼은 어쨌든 말을 하게 되고, 또 주목을 받잖아요.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소심하고 우울한 아이였는데 랩 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 그 부분이 크게 와 닿았어요.

한: 소심하다는 게 뜻밖이에요. 특히 래퍼가.
kebee: 그런가요, 지금도 사실 좀 내성적인 편 아닌가 싶어요. 제가 심리학과인데 관련 진단을 해보면 항상 내향성으로 나오거든요. 그런 걸 보면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사람 같아요.

한: 음악 가사가 참 시적인 게 많아요, 혹시 문학에도 관심이 있나요?
kebee: 원래 랩 하기 전에는 중¡¤고등학생 때 시를 자주 썼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긴 한데 그냥 끼적이는 낙서 같은 거예요. 어릴 적에는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어도 일기에 자주 써왔어요. 그게 힙합을 만나며 랩으로 표현된 거죠. 시대별로 랩에 대한 스타일과 기준이 다르지만, 저 스스로에게 랩은 아직 음악 이전에 저를 표현하는 시라고 생각해요.

한: 자기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시를 쓰는 것과 랩을 하는 것, 두 일이 비슷해 보여요.
kebee: 그렇죠. 글만 쓰던 시절에는 제가 랩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는데, 사실 두 분야가 되게 가까워요. 래퍼도 자기 가사는 직접 쓰기 때문에 글 쓰는 것도 중요해요. 글을 잘 못 쓰면 가사도 좀 질이 좋지 않죠. 래퍼도 일종의 작가예요. 기본적으로 래퍼가 자기 가사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요.
 
"딱히 내 음악이 감성 힙합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시적인 랩이 키비 음악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감성힙합’이란 별명이 있는데 본인은 이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kebee: 되게 간지러운 말이에요. 감성 힙합... 사실 모든 음악은 다 감정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제 음악이 좀 더 건드려서 인 것 같아요.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아닐까요. 이를테면 누군가는 자신의 명예, 돈,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래퍼도 있고 저처럼 마음의 움직임에 관심 있는 사람도 있는 거죠. 서로 관심 있는 게 다를 수 있잖아요.
누군가 제 음악에 대해 감성힙합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제 음악을 ‘감성 힙합’이라 정의 내릴 필요도 없는 거고, 반대로 부정할 필요도 없는 거고. 단지 제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지켜나가고, 또 제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예요.

한: 또 힙합은 라임도 맞춰서 써야 하지 않나요?
kebee: 네, 그건 기본적인 거예요. 막 힙합은 자유롭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켜야할 형태없이 맘대로 자유롭기만 한 게 아니에요. 비트, 음악에 관한 태도 등 지켜야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어요.

한: 그런데 본인은 라임보다 표현을 더 중요시한다고 하던데
kebee: 아, 저 라임 되게 중요시하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죠. 라임은 그 자체보다는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넣는 거거든요. 그래서 라임은 기본적으로 재밌어야 해요.

한: 그거 일일이 맞춰 쓰려면 머리 아플 것 같아요.
kebee: 원리만 조금 알면 금방 할 수 있어요. 진짜예요!

"각자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 뿌듯하다."
한: 음악 활동을 하며 힙합 레이블 ‘소울컴퍼니’를 만드셨는데요. 이후 소울컴퍼니는 한국 힙합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대외적으로도 대단한 일이였는데, 본인 인생에서는 어떤 의미를 줬나요?
kebee: 그건 저 혼자 한 게 절대 아니었고, 다들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던 거로 생각해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라질 줄은 몰랐거든요. 돌이켜보면 제가 해왔던 일 중에 좋았던 기억도 있고 아쉬운 일도 있었어요.
그중에 보람 있던 기억은 그 일을 즐기는 동안이었고, 제게 아쉬운 건 그것을 지키려 했던 것이에요. 음악을 즐기는 게 아닌, ‘내가 어떤 위치고, 얼마나 매출을 올리고 있구나’ 이런 사고 있잖아요. 한 조직을 지키자고 생각한 순간부터, 하나 둘 씩 나쁜 일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저는 체제를 만드는 역할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 데 언제부터인가 조직을 지키려는 시스템을 자꾸 만들려 하고 있었어요. 어느 쪽으로 달려가자는 게 아닌, 우리가 달려갈 길은 몇 미터고 폭이 얼마니까 여기서는 몇 열로 맞추자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 소울컴퍼니를 하며 뿌듯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kebee: 다들 각자의 음악으로 자기만의 밭을 꾸밀 수 있게 됐다는 점이요. 처음에는 모두 풋내기고 아마추어였지만, 다들 성장해서 지금은 각자 무대에서 또 다른 식구를 만들고 함께 할 사람을 만들어나갈 정도로 서로 성장했다는 것만으로 소울컴퍼니는 의미가 있죠.

"요즘은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길이 다 어려운 세상."
한: 힙합 래퍼도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류 문화라 보기엔 힘들잖아요. 이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kebee: 지금은 음악 말고도 다 어렵잖아요. 취업문제도 있고 등록금도 비싸고, 어려운 게 한두 개인가요. 그중에 음악이 특별히 어렵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런 건 있겠죠. 음악을 하는 일이 불확실하다는 점이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뭐든지 성공으로 가는 길은 자기 가는 길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으로 생각해요. 내가 가려는 길에 있어서 지금 뭐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깨닫고 그걸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한: 그럼 본인은 계속 힙합을 하고 싶으세요?
kebee: 아 그럼요. 방법은 달라져도 계속 제가 하려는 건 똑같을 거예요. 제가 10대 시절에는 제가 말하지 못한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20대에는 그걸 랩으로 표현할 수 있고, 또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작품으로 느껴질 수 있게 된 것. 진짜 감사할 일이죠. 지금 30대에는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겠죠. 물론 랩도 당연히 하겠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어떤 일은 하건, 자신을 표현하는 일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그. 자신의 손을 잡아 달란 메시지가 유난히 많은 그의 노래 가사처럼, 그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 것이다.

일러스트 손다애 기자 sohndaa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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