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씐 ‘콩깍지’를 벗겨라
한글에 씐 ‘콩깍지’를 벗겨라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3.10.05
  • 호수 13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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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우수한 문자라서 때로는 불편해요

한글을 설명할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문자 중에 가장 뛰어난 문자라고 소개한다. 물론 한글의 우수한 점도 상당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글도 불편한 점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글 사용할 때 편한 점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점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활동을 통해 진정으로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대상의 빼어난 점뿐만 아니라 허물도 볼 줄 아는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글은 이래서 ‘편해요’
한글은 제자 원리가 일관되게 적용되는 글자이므로 그 규칙만 잘 안다면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한글을 으레 ‘과학적이다’라고 평하는 것과 연관 있는 내용이다.

먼저 자음의 경우에는 발음할 때 발생하는 모양을 본 떠 만들었다. ‘ㄱ’과 ‘ㄴ’은 발음할 때 혀 모양을 가져와 만든 글자다. ‘윽’과 ‘은’을 발음해 보면 혀의 모양이 ‘ㄱ’과 ‘ㄴ’처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ㅇ’의 경우는 발음할 때 목구멍 모양에 착안하여 생성한 글자다. 이렇게 발음할 때의 모습과 문자의 형태가 닮았기 때문에 한글을 쉽게 학습할 수 있다.

다음으로 모음의 경우에는 동양철학 사상 중 하나인 ‘천지인(天地人)’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천지인은 만물을 구성하는 세 개의 요소를 하늘(·), 땅(ㅡ), 사람(ㅣ)으로 상정한 것인데 이것을 기본 형태 삼아 다양한 모양의 모음을 제작할 수 있다. ‘ㅗ’는 ‘ㅡ’ 위에 ‘·’를 결합하여 만든 모음이고 ‘ㅜ’는 ‘ㅡ' 아래에 ‘·’를 두어 만든 모음이다.

정종수<인문대 국문과> 교수는 “자음과 모음의 제자 원리가 달라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구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영어의 모음 중 하나인 ‘a’와 일어의 모음 중 하나인 ‘あ'는 자음과 형태상 다른 점이 없지만 한글의 ’ㅏ‘는 자음과 형태가 현격히 달라 자·모음의 구분이 쉽다.

마지막으로 한글에는 ‘가획의 원리’가 있는데 정 교수는 가획의 원리를 “한 획을 추가할 때 발음이 거세지는 원리를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한글은 ‘가획의 원리’를 통해 소리의 생성 과정을 음운의 체계와 연계한 과학적인 글자다. 예를 들어 울림소리인 ‘ㄴ’에서 한 획을 더하면 예사소리인 ‘ㄷ’이 되고 또 한 획을 더 하면 거센소리인 ‘ㅌ’이 된다.

영어의 알파벳은 한글과 다르게 가획의 원리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발음이 유사하다고 해서 형태상으로 유사한 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 예로 한글의 ‘ㄷ’과 ‘ㅌ’은 모두 ‘파열음’으로써 그 형태가 비슷하지만 영어의 ‘d'와 ’t'는 ‘파열음’임에도 불구하고 모습의 유사성이 없다.

한글은 이래서 ‘불편해요’
‘가획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소리가 비슷하면 형태도 비슷하다는 과학적인 면모도 있지만 이는 바꿔서 말하면 문자 간의 시각적 구분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즉, 문자와 문자의 형태가 확연히 달라 헷갈릴 염려가 없어야 하지만, 한글의 경우는 그 구분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글은 소리의 차이를 미세한 기호 차이로 구분한 반면 소리와 상관없이 글자를 만든 로마자 같은 경우는 문자와 문자 사이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달라 문자를 오인하는 경우가 적다. ‘ㄹ’과 ‘ㅌ’은 시각적 변별력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한글은 음소를 풀어쓰는 것이 아니라 음절단위로 ‘모아쓰기’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한글은 알파벳과 다르게 자음과 모음에 해당하는 활자만 있어서는 안 되고 한 음절에 해당하는 글자를 만들어야 했다. ‘닥·달·닭’과 같은 음절 글자 전체를 활자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 자모로 만들 수 있는 음절 글자의 개수는 약 1만 8천여 개나 된다.

이 점은 연속적으로 한글을 디지털화하는 ‘한글의 전산화’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위치하는 곳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유니코드(Unicode)'는 컴퓨터에서 세계 모든 나라의 언어를 통일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게 제안된 국제적인 코드 규약이다. 정 교수에 의하면 “유니코드에서 최대로 수용할 수 있는 문자 수는 6만 5,536자이고 이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문자는 한자로 39.89%(26,142개), 다음으로 한글은 17.04%(1만 1,172자)로 2등을 차지하고 있다"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마자는 30자 안팎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음소문자인 한글이 한자의 수에 육박하는 코드 할당 비율을 가지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유니코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자모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절의 수는 1만 1,172자보다 많다. 이 때문에 한글은 컴퓨터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음절 글자가 존재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도움: 정종수<인문대 국문과> 교수
참고: 도서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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