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하지 마세요, 그래도 기사는 쓰니까
압박하지 마세요, 그래도 기사는 쓰니까
  • 이희진 편집국장
  • 승인 2013.09.02
  • 호수 13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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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2학기를 맞아 학교는 오랜만에 생기를 띠었다. 학생과 교직원, 교수 등 누구랄것 없이 캠퍼스를 누비는 모습, 삼삼오오 모여 방학 중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또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신문사 또한 개강을 맞아 수차례의 회의를 거치며 새로운 모습과 다양한 정보로 독자들을 맞이하려 단장을 마쳤다.

취재 기간이었던 지난주는 새로운 기자들이 개강호 기사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한 주였다. 기자들은 먼저 담당 부서 및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간절하고 절박한 기자의 마음과는 다르게 취재 요청이 엎어지거나 준비된 아이템을 쓸 수 없는 상태도 일어났다. 신문사에서 방학 동안 준비한 아이템이 없어지는 일은 마치 마감 날 밤을 새우는 것만큼 빈번하게 일어난다. 때문에 취재기자들은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고 재빠르게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학교를 뛰어다닌다.

하지만 아이템이 엎어지는 것보다 기자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외압’이다. 가장 일반적인 압박은 “기사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회유, 협박, 인신공격, 비난. 몇몇 인터뷰이는 기자들에게 폭언을 쏟기도 하고 권력을 앞세워 기사를 쓰지 말 것을 종용한다.

본지 기자도 대학보도부 출신을 거치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2012년 기자가 취재기자일 때, A과 학생회장 B의 발언이 문제가 돼 아이템으로 확장시켜 취재를 나갔다. 취재하는 중 학과 내부적으로 많은 불만이 쌓였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에 담당 교수 C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취재 과정은 실망 그 자체였다. 교수는 기자를 불러 “기사를 쓰지 말 것”을 강요했고 해당 발언자를 연구실로 불러 “정말 그 발언을 한 것이냐”라며 다그쳤다. 결국 기자를 먼저 연구실에서 내보낸 뒤, 교수 C와 학생 B는 개인면담을 가졌다. 둘 사이에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날 저녁, 기자는 학생 B로부터 “발언을 취소하겠으니 기사를 내지 말라”라는 전화를 받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썼다. 기사의 리드가 ‘학생회장 B의 발언으로 문제를 알아냈다’에서 ‘조사 결과 A과만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로 바뀌었을 뿐. 발언을 취소했다고 해도, 이미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기자에게 강하게 불만을 표해 취소 자체가 의미 없었기 때문이다. 또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를 통틀어 유일하게 A과만 그 같은 문제가 발생해 기사로 짚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주 취재 기간에도 일어났다. 취재기자가 문제를 짚으며 요모조모 물어보자 담당 인터뷰이는 “왜 학교 위신을 일부러 떨어뜨리려 하느냐”라며 기자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학교 내부의 문제점을 짚으며 일하는 것이 누워서 침 뱉는 격이라니….

기자도 사람인지라 이런 협박을 받으면 두려움이 앞선다. 어쨌든 ‘일개’ 학생기자가 ‘높으신’ 분들 부탁 아닌 부탁을 무시한 것이고, 기사 하나하나가 가지고 올 여파와 후폭풍이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오늘도 취재를 나가고 기사를 쓴다. ‘기자’가 가지고 있는 소명 의식이나 직업윤리를 떠나, 기사의 후폭풍이 학교의 ‘긍정적’인 변화를 주도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손바닥 남짓한 분량의 기사로 없던 부서까지 생기게 했던 그 힘을 믿는다는 말이다.

기자가 악역을 맡아 학교의 불편한 점을 캐고 다니는 것이, 학생들이 조금 더 학교생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길이라면 우리는 그걸로 충분하다. 기사를 잘 쓴다는 말보다, 기사를 보고 그 부분이 문제인지 깨달았다는 말이 더 반가우므로 기자들은 오늘도 학교를 뛰어다닌다. 기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인터뷰이의 협박, 회유, 비난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독자의 말 한마디다. 그러니 서로 불편하게 압박 주지 마세요, 기사는 그래도 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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