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의한, 역사를 위한
역사에 의한, 역사를 위한
  • 이희진 편집국장
  • 승인 2013.05.28
  • 호수 1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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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예인 전효성의 발언이 화두에 올랐다. 전효성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 팀은 개성을 존중한다”며 “따라서 민주화 시키지 않는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쓰인 민주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이 의사결정의 중심이 돼 모든 결정 권한을 가지는 것’이란 통상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쓰였다.

전효성이 사용한 민주화의 의미는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최초 일베에서는 자신들이 올린 게시물 비추천 버튼에 ‘민주화’라는 별명을 붙이며 이를 폄하했다. 즉 민주화라는 의미가 반대 혹은 반박의 뜻을 지니게 된 것이다. 전효성은 아주 정확하게 일베의 민주화 뜻을 구사했고 이로 인해 우리학교 경영대 축제 라인업에서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후폭풍이 거세지자 전효성은 “전혀 그런 뜻인 줄 몰랐다”고 반박했다. 어이없는 변명이었다. 역사 의식 부족이나 역사와 관련한 용어를 바르게 쓸 줄 모르는 것은 비단 전효성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신사요? 젠틀맨을 말하는 건가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라고 답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이 역사 공부를 기피하는 이유 중 1순위는 바로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역사에 흥미가 없어져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19일 세계일보가 학교 정보 공시사이트인 학교알리미의 교육과정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총 218개의 학교 중 197개교(90.4%)가 1학년까지만 한국사 수업을 한다고 밝혔다. 2, 3학년 때는 선택 과목으로 편승되고 서울대 외에는 역사를 필수로 지정한 학교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 교육이 너무 등한시되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 것이다. 미래의 주역들이 역사를 등한시한 채 입시 교육에만 매달리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고 있고 역사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으며 역사를 발판 삼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입시와 관련 없기 때문에’, ‘시험에 나오지 않아서’라는  단순하고 가벼운 생각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이런 행동이 부끄러운 것임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겐 미래가 없다. 독도나 동북공정과 관련한 문제만 해도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이 같은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중·고·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독도가 ‘어떻게’, ‘왜’ 우리 땅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당연히’라는 답이 아닌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주 드물 것이다. 또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은 이 자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대다수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과연 이런 뜻일까. 무지한 역사 인식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마저 타인의 것이 되고, 사소해 보이는 역사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뿌리가 변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역사는 흐른다. 그 안에 내가, 우리가 있다. 역사는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의 산 증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치욕적이고 가슴 아픈 과거에 대해 ‘사과’를 받고 자신의 상처를 모욕하는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우리 또한 이 같은 움직임에 공감하고 독도가 일본 땅이라느니, 국가적 차원에서 위안부 개입이 없었다느니 등의 망언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인식과 그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또 알기 위해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남’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서, 우리를 핍박했던 자와 그 안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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