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에 보는 대한민국 혼돈기의 역사
한 눈에 보는 대한민국 혼돈기의 역사
  • 류가영 수습기자
  • 승인 2013.05.11
  • 호수 13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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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에서 느끼는 백범 김구의 숨결
현재 서울시 종로구 강북 삼성병원 용지에 자리 잡고 있는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개인 사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1930년대의 대표적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서현<공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 건물에 대해 “일제 강점기에 지어지던 소위 ‘양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중앙부의 르네상스 스타일 창문이 인상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금광으로 부를 쌓은 한국의 기업가 최창학은 1938년 별장용으로 경교장을 건설했다. 당시의 별장 이름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이었다. 하지만 8.15 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지로 건물을 제공한 뒤 김구가 근처에 있던 경교의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에는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어졌으며 이승만의 ‘돈암장’ 김규식의 ‘삼청장’과 함께 정부수립 이전 건국활동의 3대 요람이었다.

▲ 지난 3월부터 시민에게 개방된 경교장의 외관으로 근대 건축의 고풍스러움이 잘 표현돼있다.
광복 후 이곳에서 여러 번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열렸고 외세에 대항해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가 조직되는 등 경교장은 반탁운동의 중심지로서 큰 역할을 했다. 경교장은 1949년 김구가 건물 2층에서 청년 안두희에게 암살된 후 다시 최창학에게 반환됐다. 이후 타이완 대사관 처, 미국 특수부대 주둔 처로 사용되는 등 여러 주인을 거쳤다. 서 교수는 이에 대해 “건축적 양식보다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가치가 훨씬 더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경교장은 1967년부터 병원 본관으로 운영되다가 2001년 서울 유형 문화재로 지정됐다. 1997년 「월간 사회평론 길」에 실린 논문을 보면 “경교장 내부가 너무 심하게 훼손돼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라는 점에서 문화재로 보존될 필요성이 있다”고 경교장이 문화재로 지정될 가치가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2010년부터 경교장 복원 사업을 시작해 3년 만에 공사를 끝낸 경교장을  지난 3월 2일부터 일반 시민에게 개방했다. 복원은 김구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할 때 생긴 유리창의 총탄 자국까지 되살릴 정도로 세심하게 진행됐다. 지상 1층에는 임시 정부 국무위원회가 열렸던 응접실 등이 전시돼 있고 2층에는 김구의 침실과 서재 등 개인 공간이 개방돼 있다. 지하 1층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으며 전시회의 입장은 무료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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