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값’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값 비싼 세상
내 ‘몸 값’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값 비싼 세상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3.04.30
  • 호수 13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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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고물가, 스태그플레이션이 다가온다

지난달 5일 김재철<새누리당> 의원은 보도 자료를 통해 담배 값 인상과 관련한 대표 법안을 발의했다. 흡연으로 인한 조기사망과 간접흡연을 포함해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금액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반대운동을 진행했고 기획재정부도 담배 값 인상 소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파이낸셜 뉴스를 통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물가까지 치솟으면 당장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경기에도 찬물을 끼얹을 게 뻔하다”고 밝혔다.

스태그플레이션, 세계를 잠식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임상오<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는 전반적으로 침체되지만 물가는 상승하는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기존의 경제 이론에서는 호황 상태에서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인플레이션(inflation)’과 경기 침체에서 물가는 떨어지는 ‘디플레이션(deflation)’으로 세계 경제 체계를 설명해왔다. 하지만 1970년대 석유 파동이 발생하면서 선진국에서는 물가가 상승하는데도 경기가 침체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됐다. 기존의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최초로 발생한 것이다. 석유 파동 당시 스태그플레이션은 급격한 원유가의 상승으로 인한 비용 인상이 경제의 총체적인 공급을 위축시켜 발생한 현상이었다. 책 「달러 쇼크」는 1970년 석유 파동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서술한다.

“1970년대 서방 세계를 덮친 스태그플레이션은 10년 이상 지속됐다. 경제는 얼어붙고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으며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의 고속성장이 가져다준 부유한 생활을 맛보았던 서방사회는 이렇게 빈곤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석유 파동, 국제 경제를 뒤엎다
석유 파동 이후 석유 원유는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 됐다. 기본적으로 원유는 전기와 같은 동력을 발전시킨다. 또 냉방과 난방에도 원유가 이용된다. 옷에 포함된 폴리에스테르도 원유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도로를 포장하는 아스팔트와 생활필수품인 플라스틱조차도 원유로 만들어진다. 

1970년대에 세계는 두 차례의 원유 파동(oil shock)을 겪었다. 1차 석유 파동이 있었던 1974년에는 1배럴당 4달러였던 원유 가격이 1년 동안 14.5 달러로 상승했다. 2차 석유 파동이 있었던 1979년에는 원유 가격이 1배럴당 14.5 달러에서 40달러로 다시 상승했다. 결국 1980년의 원유 가격은 1974년에 비해 무려 7배나 상승했고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은 원유 가격의 급등으로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임 교수는 “석유 파동은 OPEC(석유 수출 기구)가 전 세계의 석유 공급을 줄이는 담합으로 인해 시작됐다”며 “유가의 상승으로 석유를 사용한 모든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서 ‘코스트 푸시(Cost push inflation,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OPEC에 의해 석유 공급량이 감소하면서 유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올라가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이런 현상은 원유를 원자재로 하는 상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배나 비행기의 수송비와 석유 난방비의 증가 정도는 상품의 가격에 그대로 전가됐다. 또 미국의 경우 1974-75년 물가가 12% 상승했고 1979년의 경우에는 물가가 13%나 상승했다.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 상품의 판매는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재고가 늘고 생산은 위축됐다. 공장은 조업을 중단하거나 폐업돼 실업자를 대거 배출했다. 미국의 경우 1973년 5% 수준의 실업률이 1975년 중반에는 9%로 급증했다. 원유 값의 폭등으로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경기 침체와 함께 지속됐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이었다.

자원이 빈약한 일본은 1974년 석유 위기로 국내 석유 가격이 4.5배, 국내 도매물가는 30% 이상 뛰었다. 일본의 국민총생산은 한국전쟁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홍콩은 석유 위기로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등화관제란 ‘전쟁 중 적기의 야간공습에 대비하고 적의 작전수행에 지장을 주기 위해 일정 지역의 일반등화를 제한시간 동안 강제로 제한하는 일’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홍콩의 밤은 이제 석유 위기와 홍콩 주식의 폭락으로 정적이 감도는 죽음의 도시로 변하고 말았다.

수요와 공급, 모두를 주시해야
임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차원적인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임 교수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총 수요 관리 정책’과 ‘총 공급 관리 정책’이다. 먼저 ‘총 수요 관리 정책’은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다. 임 교수는 “우선 돈이 있으면 소비가 가능해진다”며 “확장적인 통화 정책을 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총 수요 관리 정책의 대표적인 방법은 ‘금융정책’으로 경기 침체 시에는 금리를 낮춰 돈의 수요를 자연스럽게 늘리는 것이다. 반대로 경기 과열 시에는 금리를 높여 돈의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총 공급 관리 정책’은 유가 인상과 같은 비용 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추 값이 급등했을 당시 정부는 배추 수입량을 늘림으로써 시중의 배추 공급량을 높여 배추 값을 조절했다. 또 정부가 기업에 압력을 넣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것도 총 공급 관리 정책의 일부이다. 임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한 가지 정책으로만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총 수요 관리 정책과 총 공급 관리 정책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한 복합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움 : 임상오<상지대 경제학과> 교수
참고 : 책 「달러 쇼크」, 「스태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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