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와 하인스 워드, 그 건널 수 없는 강
‘엘레나’와 하인스 워드, 그 건널 수 없는 강
  • 한대신문
  • 승인 2006.04.09
  • 호수 12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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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아<비교역사문화연구소>연구교수
“이봐요 에레나 무얼 하나. 종일토록 멍하니 앉아 어떤 공상 그리할까. 시집가는 꿈을 꾸나 돈 버는 꿈을 꾸나. 정말 에레나는 바보 같아 오늘 하루 이런 난리. 딱정벌레야 너는 아니. 비닐장판 위에 딱정벌레 하나뿐인 에레나의 친구. 외로움도 닮아가네 외로움이 닮아가면 어느 사이 다가와서 슬픈 에레나를 바라보네.”

인순이의 노래에 등장하는 엘레나는 친구라곤 딱정벌레뿐, 무료할 때면 홀로 공상에 젖어 시집가는 꿈, 돈 버는 꿈을 꾸지만, 하인스 워드에게는 ‘친구’도 많고 하루가 너무 바빠 비명을 지를 지경이다. ‘엘레나’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기지촌 여성, 혹은 기지촌과 관련된 혼혈 여성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였다. ‘엘레나가 된 순이’란 한국 전쟁 중에 생계를 위해 기지촌으로 ‘떠난’ 여성을 지칭하는 방식이었다.

즉, 오랫동안 한국에서 혼혈은  기지촌-여성이라는 상징체계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단지 민족이라는 상징만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엘레나가 된 순이’란 전락을 의미했고, 이 전락은 단지 민족적 의미만이 아니라 철저하게 경제적 관점에 입각한 신분 논리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많은 지면에서도 제기되고 있듯이 왜 하인스 워드와 다니엘 헤니에는 열광하면서 우리 주변의 무수한 혼혈인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냉정한가?

물론 여기에는 순혈주의적 민족주의라는 요인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실은 무엇보다 문제적인 것은 ‘몸값 높은’ 하인스 워드와 다니엘 헤니는 환영하지만, 변두리 스탠드바나 동두촌 주변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혼혈인들은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멘탈리티일 것이다. 혼혈인 뿐 아니라 필리핀이나 동남아시아 밴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일상화된 조롱 역시 이런 연장에 놓인다.

즉, 표면적으로 순혈주의적 민족주의로 나타나는 혼혈에 대한 이러한 이중태도의 이면에는 철저한 경제주의와 젠더화된 가치 체계에 의한 성차별적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모든 혼혈인 자체를 일상 공간에서 배제하고 비가시화시켰던 종래의 순혈주의적 강박 관념에 비교하자면 현재 한국 사회의 관용성은 상대적으로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에 대한 인정이 오히려 철저한 경제주의에 기반 한 논리로 전유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2006년 한국 사회에서 배제와 포섭의 경계는 동일한 혼혈 그룹에 대해서도 “몸값이 높으신 분”과 “몸을 파는 사람” 사이의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분리의 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순혈주의적 민족주의는 역사적으로도 그 출발에서 경제주의(식민주의적인 착취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문제를 여기서 본격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종주의적 정서 구조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작용하는 경제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인 분리와 착취의 논리를 성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역시 간략하게 논의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혼혈이라는 정체성이 매우 불순하고 ‘더러운’ 것으로 간주되고 배제되어 온 것은 “몸을 파는 것”이라는 표현에 각인된 강박관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혼혈은 언제나, 여전히 엘레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는 간략하게 바로 이성적으로 신체화된 수사가 어떻게 몸 값 높은 혼혈인에 대한 선망과 대다수 혼혈인에 대한 배제의 지속이라는 현재의 멘털리티로 이어지는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 “몸을 파는 것”이라는 표현은 철저하게 여성의 신체와 관련된 성적 의미로 환치된다. “몸값을 높이는 것”이라는 표현이 동일한 신체적 수사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직장, 연봉, 능력이라는 의미 연쇄를 따르는 것에 비해, “몸을 파는 것”은 여성, 성매매, 더러움이라는 의미 연쇄를 지닌다. “몸을 파는 것”과 “몸값을 높이는 것”이 동일하게 신체에 대한 계약적 행위를 의미함에도 명확히 성적으로 차별화되어서 재현되는 것은 성별화된 신체에 대한 경제적 효용 가치 판단의 차이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싸구려로 팔리는 것”이고 남성의 몸은 “계약 행위의 대상”인 것이다. “몸을 파는 것”은 신분적 지위의 하락의 극점이며 그런 의미에서 몰락으로 간주된다. 반면 “몸값을 높이는 것”은 모든 한국인의 희망 사항의 최종 심급이자, 신분 상승의 대표적 지표이다.

“몸값이 높은” 하인스 워드와 다니엘 헤니에는 열광하지만, 여전히 “몸을 파는 것”으로 간주되는 노동에 종사하는 혼혈인들에 대해서는 잔인하리만치 냉정한 한국 사회의 심정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순혈적 민족주의에 내포된 이러한 경제적, 성적 배제와 차별화의 논리를 함께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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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20:14:56
이 글은 혼혈과 관련된 사회적 이중태도와 성차별 문제를 신중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와 경제주의가 혼혈에 대한 대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강조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경제적 가치 판단과 성적 차별화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혼혈인들의 현실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려가 필요한 주제를 정확하게 다룬 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