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신분 세습, 교육
또 다른 신분 세습, 교육
  • 이희진 편집국장
  • 승인 2013.04.01
  • 호수 13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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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사회적 계층을 구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언어’다. 1066년 노르만의 침략 이후 영국의 문화가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돼 현재 영국 지도층이 쓰는 언어는 약간의 프랑스어가 가미된 영어로 변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는 현재 영국식 영어의 근본은 과거 노동자 계층(peasant)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이다.

영국에서 언어가 계층을 판가름하는 기준 중 하나였다면, 우리나라는 ‘교육’이 그 사람의 사회적 계층을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여겨졌다. 사대부는 그때 당시의 고급언어였던 한자를 배웠고, 일반 백성은 언문이라 불리던 한글을 배웠다.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1930년 이후까지 문맹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기회, 가정의 뒷받침, 특히 돈이 있어야 한글 교육에 접근할 수 있었듯 하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아주 익숙한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교육열이 뜨거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 애니메이션 더 심슨(The Simpsons)에선 심슨이 ‘프로펠러(아이의 성장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시키며 뒷바라지하는 부모를 의미) 데디’가 돼 바트의 숙제를 대신해 주는 모습으로 한국 부모를 패러디했다. 한국 사교육의 삼대 주범인 ‘부모’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드높나 보다.

한국 사교육의 두 번째 주범인 ‘사교육’ 또한 심각한 문제다.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거의 7조 원에 이른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그 위용은 더욱 커졌으리라. 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들의 개성, 다양성, 자유 등은 등한시 한 채 컨베이어 벨트의 부품처럼 획일적인 교육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공교육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것인지, 사교육을 위해 공교육을 받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정부’ 또한 교육 격차를 가지고 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시장에 도입되면서 정부는 교육의 일부분도 시장에 맡겨 버렸다. 결국 앞서 언급했던 부모의 뒷바라지나 사교육이 시장경제 체제에 따라 교육은 ‘금전적으로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 돼 버린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현재 대학 입시 유형은 600가지가 넘는다. 프로펠러 맘들은 전문가들을 고용해 자식의 성적을 분석하고 자식에게 꼭 맞는 유형을 찾거나, 혹은 자식을 그 유형에 적합한 사람으로 키운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며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는 그저 먼 하늘에 별일뿐이다. 입에 풀칠해서 30만 원짜리 과외나 시켜주면 다행일까.

결국 이익과 효율의 극대화가 교육에 적용되자 돈이 있는 부모만 양질의 교육을 시킬 수 있고 돈이 없는 부모는 자식의 교육도 제대로 못 해주는 구조를 만들었다. 양질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자라서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고, 좋은 대학은 좋은 직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부유한 부모의 자식은 결국 좋은 직장에 취업할 자식이자 앞으로 부유한 부모가 될 아이다. 그리고 그들이 부모가 되면 자신들이 밟아온 과정을 그대로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다. 결국 교육을 통해 신분 세습이 이뤄진다.

무상 교육과 같이 교육이 기회균등의 관점을 취하려 한다곤 하지만 신자유주의 아래에선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교육을 통한 신분의 세습이 이뤄지는 한 기회균등은 ‘잘 살기’란 도착점을 앞둔 출발선이 다른 경주다.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교육 강대국 핀란드처럼 정부는 교육의 시장의 원리가 아닌 공공재의 영역임을 인식해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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