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진은 정말 파리에 갔을까
리진은 정말 파리에 갔을까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3.03.30
  • 호수 13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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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허구 사이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경계에 있는 대상에 ‘팩션(Faction)이라는 용어를 썼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를 뜻한다. 일각에서 조선의 무희 리진을 ‘팩션’으로 본다. 다시 말해 리진의 실존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이다.

리진은 실재하지 않았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지난 2010년 10월 21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파리의 조선 무희 Li-Tsin의 역사성>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주진오 교수는 논문에서 “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힌다.

그는 “「한국에서」 에 나오는 리진에 대한 묘사가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리진과 사랑에 빠진 젊은 대리공사를 제1대(1888~1891년)·3대(1896~1906년) 공사였던 플랑시로 간주하나 여러 모로 맞지 않다”고 말한다. 플랑시는 한국 근무 당시 40대였고 대리공사도 아니었던 데다 외교부 문서에 미혼으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또 당시 궁중무희는 외방관기로 내명부를 위한 내연에만 출연해 외교관과 만날 기회가 없었으며 외교관이 왕에게 궁녀를 달라고 청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주 교수는 이 같은 근거로 “「한국에서」 의 내용이 프랑스 독자의 흥미를 만족시키고 서구문화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허구적 진술”이라고 말했다.

리진은 실존 인물이었다
하지만 KBS <한국사 傳> 프로그램 제작팀은 주 교수의 주장을 전적으로 반박한다. 리진은 분명한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먼저 제작팀은 「한국에서」의 겉표지 뒤에 기록된 ‘이 책에 기록된 것은 과거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외교관이 기록해 두었던 것으로 이 외교관은 20년 이상을 극동을 여행한 사람이다’라는 내용에 주목한다. 위 기록은 이 책의 내용이 외교관의 기록에 따라 작성됐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사실 주한 프랑스 2대공사 프랑뎅이 자신의 실명을 밝힌 책의 이야기를 거짓이라 단정할 근거는 없다. 리진의 이야기를 꾸며서 자신의 저서에 실었다면 프랑뎅이 출판을 통해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됐을 것이다. 또 두 번씩 프랑스 한국 공사를 역임한 외교관은 플랑시 뿐이다. 프랑뎅은 책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실히 밝히고 있다.
 Un jeune charge d’affaires (il vit encore et je ne puis divulguer son nom)
‘한 젊은 대리공사(그가 살아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이름을 공개할 수 없다)’
‘mon collegue et ami’
 ‘나의 동료이자 친구’

프랑뎅과 플랑시는 중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친구이자 동료였다. 두 사람 모두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프랑뎅이 친구이며 자신의 전임자인 플랑시의 일을 허위로 기재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제작진의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진은 “리진과 플랑시의 일은 실제 일어난 일로 정확한 사실이 언급된 것이다”라며 “취재 결과 역시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외국 공사가 고종에게 여자 기생을 달라고 할 수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프랑스인 한 사람이 영남으로 가는데 그와 통역인을 위해 역참의 말 2마리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을 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플랑시는 광산채굴권과 철도부설권 등 대한제국의 이권까지도 요구했다고 한다. 제작팀은 "플랑시가 광산채굴권과 철도부설권도 달라고 하는 판에 장악원 소속 여자 종 하나 달라고 하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진의 실존 여부에 관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참고 : 논문 「파리의 조선 무희 Li-Tsin의 역사성」
       컬쳐 투데이 기고문 「팩션의 시대 누가 대중의 역사교사인가」, 「‘프랑스 조선 무희’ 리진은
실재했다」, 「리진이 실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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